[골목, 그곳을 탐하다](13)제주시외버스터미널

[골목, 그곳을 탐하다](13)제주시외버스터미널
멈춤·머무름·나아감… 낡고 허름함 넘어 꿈을 품다
  • 입력 : 2014. 08.14(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밤이 되자 화려한 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강경민기자

자가용 이용 보편화 등 영향으로 터미널 이용객 줄어
여전한 대표적인 관문… 여행자 게스트하우스 증가
2010년 문화 창조 공간 변화하려는 시도로 새 단장

'1인 1차 시대'가 멀지 않았다. 제주도내에 자동차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실제 도내 1인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0.61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 0.39대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자가용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버스터미널의 풍경도 달라졌다. 차표 한장을 사려고 한참이나 줄을 서 기다려야 했던 모습은 옛일이 됐다. 전보다 찾는 발길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곳엔 떠남과 돌아옴이 공존한다.

#"사람들 바글바글" 터미널 전성시대

1980년대 도내 자동차 수는 6000대가 채 안 됐다. 제주특별자치도 통계정보에 따르면 도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1970년 1340대, 1980년 5925대였다. 전체 자동차 수가 2013년 기준(33만 3326대)의 2% 수준이었던 당시에는 버스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터미널로 몰렸다. 버스 정류장도 몇 안 돼 제주시 외곽 지역으로 나가려면 터미널을 찾아야 했다. 1979년 7월 제주시 오라동에 문을 연 제주종합터미널은 '전성기'를 누렸다. 제주시 광양 인근에 있던 '시외버스 공용자동차 정류장'을 대신해 현재의 자리에 터미널이 세워진 시기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시 동쪽으로는 조천, 서쪽으로 애월까지 시외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타려면 터미널로 와야 했지요. 버스노선은 일주도로와 중산간 등 5개 노선 뿐이었지만 하루 이용객이 8000명에서 1만명이 넘었습니다." (주)제주종합터미널 대표이사 김광수(72)씨의 말이다. 김씨는 터미널이 처음 문을 연 당시부터 운영을 맡고 있다.

설이나 추석명절 때면 터미널은 초만원이었다. 한가위 전 벌초 행렬이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건물 밖까지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면서 "직원 7~8명이 터미널 매표소 양옆으로 나뉘어 표를 팔아도 역부족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골목 풍경도 달라졌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고층 건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도시의 모습이 완성돼 갔다. 현재 터미널 주변에는 금융기관, 식당, 모텔 등이 들어서 있다.

버스 탑승장 전경

#이용객 줄어도… 대표적 '제주 관문'

개인차량 이용이 보편화되고 제주 어디에서든 쉽게 버스를 탈 수 있어지면서 터미널을 찾는 이용객은 줄고 있다. 제주종합터미널에 따르면 하루 평균 이용객이 1500명 수준이다. 30년 전에 비해 4배 가량 줄어든 셈이다.

김광수씨는 "20~30년 전만 해도 터미널에서 장사를 하면 '대박' 나서 나가곤 했다"면서 "지금은 이용객이 많이 줄어 비어있는 점포도 있다"고 말했다.

이용객은 전보다 줄었지만 터미널은 여전히 대표적인 '제주의 관문'이다. 제주섬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버스노선의 시작점인 터미널은 '뚜벅이' 여행자들에겐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몇년 전부터 터미널 인근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늘고 있다. 터미널 1km 반경 인근에 현재 게스트하우스 5~6곳이 운영중이다.

이승건(41·남)씨는 터미널 인근 모텔을 개조해 지난해 '제주마실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2009년부터 성산읍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제주시내로 자리를 옮겨왔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선택한 것은 배낭 여행객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밤 늦게 제주에 도착하거나 아침 일찍 제주를 떠나는 여행객들은 터미널 인근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면서 "이용객은 줄었다고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터미널은 제주여행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터미널'이 단지 이동을 위한 장소에 그치는 것은 아쉽다"고 이씨가 덧붙였다. "(터미널이 문을 닫는) 밤이 되면 인적이 뚝 끊깁니다. 보고 즐길 곳이 마땅치 않죠. 그러다 보니 단지 이동수단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느는 만큼 골목에 '문화'가 덧입혀졌으면 하는 바람의 표현이다.

사진 위부터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대형 조형물

할머니와 손자가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한 터미널 앞 조형물.

#터미널, 문화공간을 꿈꾸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30여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 덧씌워진 '낡고 허름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까지 진행된 내부 공사를 통해 1층 대합실과 매표소, 화장실 등이 새롭게 단장됐다.

지난 2010년에는 터미널을 교통시설 이전에 새로운 문화 창조공간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제주공공미술추진단이 진행한 '2009 아트스케이프 제주'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프로젝트 주제는 '멈춤, 머무름, 나아감'. 터미널 건물 외벽에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길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설치됐고, 건물 서쪽에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 사물, 풍경 등의 사진이 담긴 대형 전시물이 들어섰다. 건물 입구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도 세워졌다.

다른 지역에서도 터미널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진행돼 왔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인천종합버스터미널에선 '터미네이터 축제'가 열렸다. 터미널(Terminal)과 창조자(Creator)를 뜻하는 영어를 합성해 이름 지어진 '터미네이터' 축제는 콘서트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한마당으로 꾸며졌다. 지역의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이 힘을 보탰고, 터미널 인근 골목 안에선 방문객과 상인, 예술인들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교통시설을 넘어 문화공간으로서 터미널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47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