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살 담긴 관찰일기

바다 속살 담긴 관찰일기
강영삼의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
  • 입력 : 2015. 09.04(금)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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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항구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나 바다와 배, 문섬과 그 너머 수평선, 바다친구들을 벗삼아 자란 남자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서귀포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늘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서귀포 바다를 품으며 자란 소년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렇듯 포근하게 감싸주던 서귀포바다가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점점 삭막하게 변하는 것이 안타까운 그는 오랫동안 '수중 로그북(관찰일지)'을 써왔다.

'우리 어멍 또돗한 품, 서귀포 바다'를 펴냈던 강영삼씨가 8년만에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를 펴냈다.

이 책은 제주도의 풍광 좋은 곳을 알려주는 관광 안내서가 아니다. 제주도에 정착하고픈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도 아니다. 그저 제주도 토박이로 살아온 한 중년의 사내가 어머니 품 속 같은 서귀포 바다를 유영하며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곳곳에 어려 있는 지난날의 추억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서귀포 수중 세계를 담담하게 펼쳐놓은 서귀포 이야기이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귀포 바다의 수중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구성이 독특하다. 서귀포의 풍광과 그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되 거기에는 언제나 서귀포 바다의 속살, 수중 세계가 담겨 있다. 바로 저자의 로그북(log book)을 통해서다. 로그북이란 항해·항공 일지 또는 관찰일지라는 뜻으로, 새로운 대륙과 대양을 왕성하게 개척하던 대항해시대 무렵 탐험가들이 항해의 기록을 통나무(log) 껍질에 새겼다는 유래에서 비롯됐다.

'교육을 통해 안전하게 다이빙하자'를 모토로 삼는 미국 스쿠버다이빙 교육기관 NAUI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가 본격적으로 로그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 로그북을 기록하면서 수중 세계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더욱 풍부해졌다고 고백한다.

스쿠버다이버들이 사용하는 로그북에는 보통 다이빙 횟수, 날씨, 장소, 수심, 잠수 시간, 시야, 수온, 조류, 입출수 시간, 중량벨트 무게 등의 표준 정보를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렇듯 다양한 내용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체계적인 스쿠버다이빙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기본 정보를 익히면서 스스로의 경험을 쌓아 가는 기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이 50을 넘긴 그의 로그북은 '아날로그'의 맛이 살아있다. 빼곡한 손글씨와 묘사한 그림 등은 사람냄새를 풍긴다. 곳곳에 만년필과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연필로 세심하게 채색한 그림을 보면 정겹다.

저자 강씨는 "자신만의 진솔한 기록은 또 다른 나를 완성해 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민낯을 내보이는 것이 두렵지만 영원히 사랑할 내 어머니 같은 서귀포 바다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유년 시절의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그러니 나의 민낯을 드러낸다 해도 부끄러울 게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저 푸른 바다 속을 유영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수중 생명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서귀포가 못내 그리울지도 모를 일이다. 지성사.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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