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의 재발견, 세계인의 보물로]<br>(10)곶자왈의 역사문화(하)

[제주 곶자왈의 재발견, 세계인의 보물로]<br>(10)곶자왈의 역사문화(하)
제주도 생활역사의 한 단면 복원할 수 있는 공간
  • 입력 : 2015. 09.16(수) 00:00
  •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선조들은 곶자왈에서 필요한 만큼의 자원만 이용했다. 이는 자연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곶자왈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지곶자왈 전경.

선조들, 필요한 자원만 이용하며 숲 보호 노력
생활용구 제작·땔감 채취·숯 생산 장소로 활용
수대 걸친 생활 유적군 확인 학술적 가치 높아


곶자왈의 자원 이용 방식은 지역이나 마을에 따라, 주민들의 경제활동에 따라, 곶자왈을 이루는 지형적 특징이나 식생구조 등에 따라 그 양식을 달리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은 곶자왈의 지질과 지형 특성이나 동·식물의 안식처인 숲의 구조(생태계)를 완전히 변형시키거나 또는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형태의 자원 이용 방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선조들은 항상 곶자왈의 생태계가 유지되고, 더불어 지질·지형적 특징도 그대로 보존되는 상황 속에서 필요한 만큼의 자원만을 이용해 왔다.

곶자왈도립공원서 발견된 생활용구.

제주대학교(교육대학) 정광중 교수의 '곶자왈의 인문사회자원의 현황과 보전을 위한 제언' 중 '1970년대 이전에 행해진 경제활동별 곶자왈 자원의 이용 실태'에 따르면, 숯 생산(가마 축조)은 선흘·교래·함덕·저지·청수·산양·화순 곶자왈 등에서 행해졌다.

옹기류 생산(가마 축조)은 산양·무릉곶자왈, 목축업은 교래·저지·상창·화순·청수·상도·하도곶자왈, 산전·화전·수전 경영은 선흘·저지·세화·수산곶자왈 등에서 이뤄졌다. 양봉업의 경우 선흘·화순곶자왈 등에서 행해졌는데, 지금도 소규모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밖의 사냥활동(노루, 오소리, 꿩 등), 생활용구 제작, 신탄 및 땔감 채취, 야생열매 및 식용·약용식물 채취는 모든 곶자왈에서 이뤄졌다.

이처럼 곶자왈로부터 얻는 자원의 종류는 실로 다양했으며, 1년을 통틀어 자원의 이용방식도 독특했다.

곶자왈도립공원서 발견된 집터.

특히 2012~2013년 조사를 통해 발견된 선흘곶자왈 내 관련유적들은 시기를 달리해 군집현상을 보여주는 '단위생활 군집유적'으로, 이 같은 군집유적이 더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흘곶자왈의 역사문화자원(강창화, 정광중, 최형순, 현화자, 김찬수)'에 따르면, 이러한 단위생활 군집유적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우선 선흘리 주민들이 생산 활동을 위한 '계(契)'와 같은 품앗이 조직을 통해 수대에 걸쳐 생산 목적과 사회적 경제이득을 위한 행위의 공간으로 곶자왈을 이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생활 유적군 내에 적어도 5곳 이상의 작은 경작지(山田)가 확인되는데, 이 경작지 조성은 밭 경계 돌담과 머들(돌무더기)의 조성과 맞물린다.

곶자왈도립공원서 발견된 돌담.

무엇보다 선흘곶자왈 내 약 6600여㎡(약 2000평)의 공간에 돌숯가마 1기를 비롯해 1회용 숯가마(10기), 숯막(2기), 산전과 머들(경계용 돌담 포함), 노루텅(2기) 등 다양한 생활유적이 자리하고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물텅(식수용 및 숯굽기용)이 존재, 지역 주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시기를 달리하면서도 일정 기간 농경은 물론 숯굽기, 노루사냥 등 생산과 수렵활동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생활문화자원 밀집지구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 주로 선흘리 주민들이 숯 생산, 산전 경영, 사냥(야생노루) 등을 행하던 장소다.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말부터 숯 생산(백탄 소량 생산)이 이뤄졌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산전 경영, 사냥활동 등이 행해졌다.

해방 이후에는 다시 보다 진전된 형태의 숯 생산(검탄의 대량 생산) 등이 행해졌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삼림보호정책 등에 의해 선흘곶자왈의 자원 이용도 거의 소멸 상태로 접어들게 됐고, 오늘날에는 울창한 상록수림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은 곶자왈의 자원을 이용하면서도 숲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만큼 곶자왈이 주는 자연의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지금 우리네뿐 아니라 선조 대대로 곶자왈 자원의 이용과 보전이라는 인식체계가 자리 잡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선흘곶자왈 숯가마. 강경민기자

이에 대해 정광중 교수는 "과거 곶자왈의 자원 이용 방식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내포돼 있는데, 그것은 곶자왈의 지질과 지형 특성이나 동·식물의 안식처인 숲의 구조(생태계)를 완전히 변형시키거나 또는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형태의 자원 이용 방식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결과적으로 과거 우리 선조들은 항상 곶자왈의 생태계가 유지되고, 더불어 지질·지형적 특징도 그대로 보존된 상황 속에서 필요한 만큼의 자원만을 이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최형순 박사는 "한동안 잊혔던 제주도 선민들의 생활 무대를 찾아냈다는 것은 제주도 생활 역사의 한 단면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결국 생활유적 밀집 지구는 한 장소 안에 신세대와 후세대의 생활 유적이 동시에 위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고 가치를 지닌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끝>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27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