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천지연 생수 궤' 유감

[하루를 시작하며] '천지연 생수 궤' 유감
  • 입력 : 2015. 10.28(수) 00:00
  • 편집부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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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장 일도 이제 마무리 수순이다. 숨 가쁘던 1년, 애기 돌보듯 시어 다듬듯 정성을 다한 1년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만, 한여름의 그 하루하루를 건너기가 어머니 물숨 참듯 하였던 것이다.

비로소 긴장도 풀리는가, 오늘은 질펀하게 늦잠까지 잔 것이니…. 바듯이 일어나 일간지를 들춰본다. 책도 보고 글도 좀 써본다. 허지만 훤한 대낮에 농장 안 가고 책상에 앉아있자니, 아무래도 마음이 그렇다. 박차고 나와 핸들을 잡는다. 소남머리 해안길 따라 서귀포항을 향한다. 새연교 넘어서 새섬을 한 바퀴 걸어 나와, 천지연폭포의 산책로에 들어선다. 얼마만인가. 이 길이 낯설기까지 하다. 걷다가 문득 길가의 한 간판을 본다.

"천지연 하천의 하구에 형성되어 있는 너비 1.7m 높이 6m의 바위그늘 집으로서 제주어로 '궤'라 한다. 이곳에서 7점의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유물은 기원전 2500년, 제주도가 한반도와 연결되었던 연륙시기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서귀포시의 구석기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커 2005년 3월 16일 서귀포시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천지연 생수 궤' 앞에 세워진 그 간판의 내용이다. 간판만 거딱하게 서있을 뿐, 온통 잡초로 뒤엉켜 있어 정작 그 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참 귀 기울여야, 잡초더미를 비집고 나오는 그 생수의 물소리가 겨우 들릴 정도이다, 신음처럼.

참말로 간판이 무색하다. 자그마치 '서귀포시 지정 향토기념물 유산 제1호' 그 거창한 타이틀이 실로 무색한 것이다.

과연, 천지연폭포가 이 서귀포의 어떤 곳인가. 제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이곳은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끼사니 못 찰린 것들…"이라고 수군거리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다가, 김광협 시비(詩碑) '유자꽃 피는 마을'을 마주한다. 서귀포가 낳은 시인 김광협, 그가 지병으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을 때, 서울에서 돌아와 비로소 고향 호근의 품에 안기던 날은, 눈물처럼 비가 내렸다. 의논을 거듭한 끝에, 제주문학사에 전례가 없었던 '서귀포문학회장(葬)'으로 치른 것이다. 질척거리는 그 학수바위 장지에서 애통해 하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당시 필자는 서귀포문학회장(長)이었다. 그러기에 이 시비를 보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다.

발걸음을 옮겨, 그 시비 맞은 편 다리 위에 선다. 물오리 둥둥 떠 흐르는 풍경은 여전한데, 푸들푸들 넘실대던 다리통만한 잉어들, 형형색색의 그 잉어들은 보이질 않는다. 어디 갔을까, 그리운 사람처럼 다들 어디로 가버렸을까.

0형, 농장일 지칠 땐, 잠시 석파시선암(石播詩禪菴)에 들리곤 합니다. 그 그늘에 앉아, 휴~하고 한숨을 내쉬고 싶지만, 꾹 참습니다. 암벽에 선 고목들이 볼까봐서요. 험한 삶을 이겨낸 그 고목들이 웃을까봐서요. 이 들녘, 하구많은 땅 중에서 어쩌다 암벽에 인연이 닿았는진 몰라도, 한평생 오로지 그 인연을 끌어온 고목들입니다. 옹이 괭이 얽히고설킨 뿌리들을 보노라면, 그 순명, 멍엣줄보다 질긴 그 행로를 한눈에 보고 있노라면…. 절로 숙연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다한들, 차마 저만큼이야 했을까 싶은 거지요.

0형, 그토록 처절한 삶을 딛고 선 저 고목들이, 묵묵히, 그늘을 드리웁니다, 포근히 온갖 새들을 깃들입니다.

툭하면 "죽겠다" 소릴 먼저 하는 삶들이, "뭐합네 뭐뭐했습네" 입후보자들처럼 제 자랑에 목이 쉬는 우리의 삶들이, 그저 부끄럽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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