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전원일기'농촌의 가짜 얼굴을 벗겨라

[책세상] '전원일기'농촌의 가짜 얼굴을 벗겨라
이시백 신작 소설집 '응달 너구리'
  • 입력 : 2016. 02.11(목) 18:07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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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하게 농촌과 삶의 주변부를 그려온 이야기꾼 이시백 작가의 신작 소설집'응달 너구리'가 출간됐다. 그가 2010년 이후 처음 펴내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제11회 채만식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나는 꽃 도둑이다'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흥미를 가질 소설작품 11편이 수록됐다.

 표제작 '응달 너구리'는 원주민을 무시하던 퇴직 외교관과 원주민 삼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봉의 별명 '응달 너구리'는 '보기엔 영 딱혀두 그 나름으루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말한다. 이렇게 수록작들은 정겨운 이야기로 둔갑하지만 사실 그 속은 슬픔과 억울함이 넘쳐흐르는 시대라는 것을 풍자와 해학으로 알게 해준다.

 한 마을의 이장 선거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연평도와 4대강, 그리고 빨갱이로 통칭되는 이데올로기의 강박적 의식을 담아낸 '잔설', 첫사랑 '영심'을 잊지 못해 벌어지는 '재선'의 에피소드를 통해 '구제역'의 한 단면을 묘사한 '백중', 번지 없는 주막을 운영하는 욕쟁이 할머니와 '마지막 주막'을 보여주며 '4대강'과 정치적인 실책들을 풍자한 '번지 없는 주막', 학생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애쓰는 노 선생의 모습에서 실업계 학교들이 어떻게 자본화되는가를 드러내고자 한 '구사시옷생(九死ㅅ生)'등도 들어있다.

 이 책에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지 못하는 근대 문화유산 정도로 취급되는 농촌의 모습과 기만당하는 민중의 모습이 치열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보이는 농촌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전원일기'의 풍경으로만 기억되는 농촌의 가짜 얼굴을 작가는 거침없이 벗겨내고, 이제 그런 공간은 우리 주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괴롭고 버겁고 불편하더라도 농촌의 진짜 얼굴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또 소설 뒤에 실린 정아은 소설가와의 대담은 소설을 읽는 깊이와 재미를 더해준다. '리얼리스트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농촌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몫'주제 대담을 통해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런 고민은 열한 편의 단편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칠팔십 년대가 아닌 작금의 농촌의 모습과 그 안에서 전도되어 일어나고 있는 의식들, 그리고 여전히 삶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민중이라 지칭되는 인물들의 여러 층위를 가감 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결국은 돈이여. 돈이믄 사람도 모이고, 갈라서게 하는거여"라는 주인공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농촌에도 자본의 힘이 미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건 가능한 일일까? "낮에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거나 공장에 나가고, 있는 땅은 놀리기 뭐해서 부업 식으로 하는 거죠." 작가는 대답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건 옛말이다. 이 사회는 더는 농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는 세대를 생산해 내지 않는다. 농촌에서 '사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꼭 농촌에서 '살아가는 걸' 뜻하지는 않게 됐다는 작가의 말이 아프다. 한겨레출판.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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