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김시종의 8·15와 4·3, 그리고 '재일'

[책세상] 김시종의 8·15와 4·3, 그리고 '재일'
'조선과 일본에 살다' 국내 출간
  • 입력 : 2016. 04.01(금)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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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삼켜온 찢겨진 삶의 역사

"앞으로도 4·3사건의 빚을 계속 짊어지고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제주출신 재일1세대 김시종 시인이 아흔 가까운 자신의 생을 풀어낸 자서전이 국내에서 번역·출간됐다. 제목은 재일시인 김시종 자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로 4·3 제68주년을 맞아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2015년 탁월한 산문작품에 수여되는 제42회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을 수상했다.

그가 자신의 반평생을 그린 이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조선 땅에서 보낸 소년기, 해방 후의 남북 분단, 목숨을 건 제주도에서 오사카로의 도항 등 '자이니치(在日)로 사는 것'을 시로 표현해 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김 시인은 1953년에 잡지 '진달래'를 창간해 일본어로 시와 서평, 강연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지평선' '이카이노 시집' '광주시편' 등을 냈다. 1986년 에세이집 '재일의 틈새에서'로 마이니치 출판 문학상, 2011년 시집 '잃어버린 계절'로 다카미준상을 수상했다. 당시 재일한국인 최초로 일본 대표 문학상 다카미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김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태어나, 4·3사건에 휘말려 1949년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소년 시절 대부분을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보냈다. 해방 전까지 그는 그야말로 황민화 교육이 길러낸 제국의 소년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일본 동요와 군가에 흠뻑 빠졌으며, 집에서도 일본어를 쓰지 않는 부모를 답답해했고, 전차병 학교에 지원하여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했다. 한글은 한 글자도 쓸 줄 모르고 '식민지 지배' 같은 말은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외골수 '황국소년'이었다. 그러던 1945년, 열일곱의 그는 자기 나라라는 의식조차 없었던 조선으로 '떠밀려오듯' 해방을 맞이한다.

식민지 '황국소년'으로 맞이했던 8·15해방, 남북분단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투신한 남로당 활동, 제주도 4·3사건의 전개와 참혹했던 학살의 광풍, 그 끝에 감행해야 했던 일본 밀항,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강렬한 장면들을 신중하게, 때로는 일렁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힘 있는 글로 써냈다.

저자가 오랫동안 속으로만 삼켜온 제주4·3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그는 "일본어로 시를 쓰는 자신에게 해방이란, 소년기를 뒤틀어가며 익힌 일본어의 정감과 운율을 스스로가 끊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현대사의 쓰라림이 여전히 생생한 한평생을 신중하고도 힘 있는 고유의 문체로 술회했다. '결별해야 했을 일본어로 말하고 써야 하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상황과 평생 대면하고 맞서온 시인의 이 회상기는 윤여일씨가 한국어로 옮겨냈다.

고향을 떠나온 지 49년 만인 1998년, 김시종은 비로소 제주를 다시 방문했고, 1년에 한두 번 성묘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적을 취득했다. 그에게 8·15는, 4·3은 무슨 의미일까. 돌베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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