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독설'이 '약'이 된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절박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인생의 쓰라린 맛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제주출신 윤순환씨가 글을 쓰고 민송아의 그림을 함께 엮은 에세이 '그때, 나는'을 보면 그 순간을 다시금 떠올린다. 이 책에서는 인생에게 경험하게 되는 65가지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글로 담고 있다. '가치' '삽질' '희망' '구원' '눈물' 등 어떤 순간도 경험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온 행운아가 있다면 굳이 이 책을 펼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이모티콘을 날리고 싶어질 지 모른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깨달은 성찰들이 담겨 있다. '희망은 원래 희미한 것. 절망이 항상 분명하듯(희망)' '우리에게 자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상대가 되어야 한다(삽질)' '고통받는 당신은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하지만 정착 고통은 당신과 소통하기를 원한다(고통)'"고 한다. 참 독하다.
제주에서도 바닷빛이 찬란한 해변으로 손꼽히는 표선에서 태어났고 한국사를 전공해 기자로 활동했던 저자의 현재 직업은 드라마제작사 대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겪었을 그의 성찰은 아름답게 정제된 표현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문체를 갖고 있다. 때론 상황을 뒤집어 생각하는 '역설'을 제시하거나 독자들의 약점을 정곡으로 조준해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이같은 그의 이야기는 때론 불편하기도 하지만 통쾌하기도 하다. 그는 '웃어요 엄마' '내일이 오면' '칼과 꽃' 등을 만들었다. 영화제작도 준비중이다.
그는 고향에 대해 "거친 북태평양의 파도와 때론 태풍으로 뒤집어지는 바다를 느끼면서, 마술처럼 변화무쌍한 바람을 겪으면서,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내 속에 무엇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나이 들어서야 알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비록 지금 그것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이 책의 또다른 볼거리는 화가이자 배우인 민송아의 '그림'들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등에 나왔던 작품들을 그렸던 민송아의 그림은 책에서 인생의 절박한 순간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의 메시지를 한층 증폭시키거나 그 메시지가 담아내지 못한 이면을 탐색하기도 한다. 글과 그림이 '따로 또 같이'의미를 창출하는 콜라보레이션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민송아는 2013년 프랑스 국제앙드레말로협회 '젊은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 고두심은 이 책에 대해 "'챔피언은 안 맞는 자가 아니라, 맞으면서도 이기는 자'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것이 '윤순환'이라고 생각했다"고 추천의 글을 남겼다. 어마마마.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