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오빠생각, 고향생각 그리고 제주생각

[목요담론]오빠생각, 고향생각 그리고 제주생각
  • 입력 : 2016. 09.01(목)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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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우리나라 서해안 논밭에 뜸부기가 찾아왔다. 명절날에 부모형제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직접 관찰하진 못한 필자에게도 설렐 정도다. 한국의 논밭은 뜸부기에게는 가장 좋은 번식지이지만, 뜸부기의 개체수가 예전에 비해 확 줄어들었다. 제주에서도 몇 번의 관찰 기록이 있을 뿐 아직까지 번식 장면이 확인되지 않았다. 뜸부기의 수컷은 닭의 벼슬처럼 이마판이 붉은 색을 띠고, 울음소리가 '뜸, 뜸, 뜸'하고 특유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동요 오빠생각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과거에는 농촌 들녘에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오빠생각'은 일제 강점기에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서러움이 깃든 동요여서 들을 때마다 숙연해진다. 희귀해진 뜸부기 생각에 더욱 더 그렇다. 한 때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뜸부기가 울음소리만큼이나 뜸해졌다. 논밭이 사라지고 농업 방식이 변하면서, 이제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희귀 철새가 되어 버렸다. 조류 전문가들에게도 뜸부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대박이다. 오죽하면 천연기념물 제446호이면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었을까. 어디 뜸부기만 그럴까. 동요 속에 나오는 '기럭, 기럭' 기러기도, '뻐꾹, 뻐꾹' 뻐꾸기의 앞날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제주의 아들 오연준군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부른 '고향의 봄'이 진한 감동을 주었다. 몇 번이고 들어봐도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제주 소년이 비록 무대에 오르기 위해 잠시나마 떠나 서울에서 불러서 그런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진하게 교차되었다. 더욱이 어린 아이치고는 고향 제주도를 생각하는 북받침이 사무쳐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고향의 봄' 역시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슬픔과 아픔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고향만큼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고향이 발전하는 데 기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근데 꽃피는 산골이 아파트 단지로, 골프장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플 때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성이 동시에 허물어져 가기에, 심히 애석할 뿐이다

뜸부기가 좋은 소식을 갖고 고향을 찾았는데, 보금자리가 도로로 변하면서 뜻하지 않게 차량과 충돌할 위험이 더 높아졌다. 서울에 간 오빠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성을 쏟는 바람에 누이생각도 고향생각도 다 잊어버렸다. 동요 속에 '오빠'와 '고향'의 의미는 점점 허울로 전락하는 듯하다. 제주에서 와서 제주생각보다 서울생각, 중국생각, 미국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제주를 지켜줄 수 있을까. 고향사람이 더 제주다운 제주생각을 할 때, 제주를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제주가 세계인의 마음고향으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 년 내내 제주 바다와 산야에는 고향이 제주가 아닌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고향 사람이 고향을 찾지 못할 정도로 제주도가 난리다. 자기들 고향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이곳 제주도에서 누리다 보니, 고향 사람들의 기분보다는 타 고향 사람들의 편의성만을 우선시되는 듯싶다. 제주의 원형을 살린다면서도 정작 수눌음 정신과 같은 제주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 지 깊이 고민할 때다.

벌초하는 날을 맞아 이번 주말에도 중산간 일대가 고향 사람들의 벌초 행렬로 북적거릴 것이다. 다소 짜증을 낼 수 있을지언정, 아이들과 함께 변해가는 고향 산천을 보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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