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밥상'은 무엇일까. 제주학연구센터는 '제주해녀음식(haenyeo Local Food)'에 대해 해녀들이 채취한 소라나 전복, 우뭇가사리, 톳 등의 패류나 해조류를 이용해 독특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대대로 전해져 온 음식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해녀밥상'은 무엇이 다른가. 해녀들의 음식, 해녀들이 채취했던 해산물을 활용한 음식, 해녀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음식 모두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녀밥상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소중하다. 해녀밥상엔 자연이 숨쉰다. 돌밭과 바다밭에서 제철에 따낸 갖은 재료를 소박하게 요리해 차려낸다. 해녀밥상을 알면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수회에 걸쳐 담아내고자 한다.
◆ 음식으로 읽어내는 '해녀문화'
제주는 지금 '해녀' 키워드로 들썩이고 있다.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다. 제주해녀는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인의 보물로 재탄생했다. 해녀의 권익보호와 해녀문화의 전승을 위해 제주해녀협회가 발족됐다.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해녀의 모습. 사진=김희동천기자
제주해녀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제시되고 있다. 해녀의 전통적 어업방식과 불턱·해신당·해녀의 작업도구 및 물옷, 해녀공동체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해녀의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밥상'에 다가서야 할 때이다. 음식을 문화로 이해해야 할 때이다. 제주해녀들이 오랜 세월 물질을 할 수 있도록 해준 해녀들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제주의 밥상은 낭푼이라고 부르는 크고 둥근 놋그릇이나 나무로 만든 남박에 밥을 담아 식구가 같이 먹었다. 이런 풍경은 쉴새없이 물질과 농삿일로 바삐 살아야 했던 제주해녀들의 바쁜 생활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4년 제주문화관광포럼에서 '제주해녀밥상'을 소개하고 문화콘텐츠로서의 개발을 위한 학술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생생한 제주 해녀의 삶이 음식을 통해 눈 앞에 펼쳐졌다.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된 '제주 해녀'가 살아있는 문화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제주도의회 제주문화관광포럼과 제주대학교스토리텔링센터 등은 '제주해녀의 삶과 그 밥상이야기'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그 이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됐고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지금도 '해녀밥상'에 대한 조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지순 향토요리명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녀밥상'을 재현하는데 나선다. 그는 '해녀밥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오랜시간 알려온 사람이다. 그 이유는 밭일에 물질에 집안일까지 하면서도 힘겨운 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온 해녀들의 음식엔 그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해녀들 삶과 문화’ 담겨있는 먹을거리에 주목제주도와 일본 넘나드는 해녀들의 음식이야기
◆'해녀밥상'을 넘어 제주밥상 기록작업
한라일보는 2016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창의주도형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제주의 맛을 지켜가는 '당찬 맛집' 기록화 사업과 '당찬 제주인의 자연밥상' 영상물 제작사업을 진행했다. 제주의 대표 향토음식전문가와 현직 한라일보 아줌마 기자가 음식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영상은 네이버 채널을 통해 제작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사의 공익적 기능 강화 및 제주음식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등 호응을 얻었다. 올해 기획취재를 통해 제주의 음식 중에서도 '해녀들의 밥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기획취재에 도전한다. 일본의 해녀인 아마는 아마들의 음식을 가지고 민박과 결합한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바다에서 갓 수확한 전복과. 사진=김희동천기자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해녀의 음식은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웰빙, 건강, 슬로푸드 와 맞닿아 있다. 바다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재료들, 그리고 해녀들의 정성으로 만들어낸 음식들은 제주만이 할수 있는 독특한 관광체험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녀들의 주식인 밥, 죽, 국, 부식류, 젓갈류 등이 앞으로 펼쳐진다. 제주도와 일본을 넘나드는 해녀들의 음식이야기도 담겨진다.
◆ 소박했던 해녀밥상은 사랑과 나눔의 밥상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던 일터이자 담소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푸는 쉼터였다. 불턱은 바다와 가까운 해안가에 돌담을 빙 둘러쌓아 놓은 장소이다. 불턱에서 함께 추위를 이겨내며 나눠먹던 따뜻한 음식들, 그녀들의 오랜 삶의 지혜와 정을 나누는 음식, 해녀의 밥상은 나눔의 밥상이다.
바다에서 갓 수확한 성게. 사진=김희동천기자
바다는 해녀들에게 소중한 해산물을 제공하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어버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해녀들은 신과 함께 기쁜 일을 나누고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받았다. 해녀들이 신들과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준비하는 것이 음식이다. 신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소박한 음식들, 영혼의 안식을 가져다 주는 음식, 해녀의 밥상은 영혼의 밥상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이뤄졌지만 사라져가는 해녀문화를 되살려내고 이어나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 해녀의 문화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주섬을 찾는 이들은 여행을 할때 중요한 요소로 먹을거리를 찾는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을 원한다. 특별한 음식은 '특별한 이야기와 삶이 담겨 있는 음식'이다.
해녀밥상(해녀박물관 전시품).
자연의 맛을 살린 제주 전통음식엔 제주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녀문화유산 중 '해녀음식문화'는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분야라 할 수 있다. 어렵게 잡아온 해산물이지만 나라에 진상하고, 가족을 먼저 챙기고, 내다 팔면 정작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참으로 초라했다. 그래도 해녀들은 가족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렇게 제주의 해녀들은 살아왔다.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해녀의 밥상,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공존해 온 해녀들의 생명의 힘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나눔의 정신이, 영혼의 숭고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