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신구간과 입춘

[휴플러스] 신구간과 입춘
신구간에 하늘로 떠났던 신들, 다시 사람사는 세상에 오니 새봄
  • 입력 : 2018. 01.25(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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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예총이 1999년부터 복원해 치르고 있는 탐라국 입춘굿. 사진=한라일보 DB

대한 후 5일~입춘 전 3일
잊히는 신구간 이사 풍습
한해 무사태평과 안녕 기원
입춘굿으로 새해 맞이하기
제주민속촌 입춘첩 써주기

봄이 오는 길목이 멀어보인다. 시린 눈날씨가 며칠동안 이어지고 있다. 저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나올수 있을까 싶은 계절이지만 봄은 곧 온다. 입춘(立春)이 얼마남지 않았다.

입춘은 새해를 맞는 날이다. 제주사람들은 이 날을 '새철 드는 날'이라 불렀다. 이 때 비로소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가 시작된다. 봄은 새날, 새해의 다른 이름이라 하겠다.

봄이 오기 전, 제주엔 신구간 이사 풍습이 전해온다. 신구간은 대개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까지 1주일 정도로 잡는다. 이달 25일부터 2월 1일까지인 셈이다.

신구간은 신관과 구관이 교체하는 기간을 말한다. 1만8000 수많은 제주 신들이 임무를 교체하는 시기라고 했다. 제주도 민간에서는 지상에 신령이 없는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 등 집안 손질을 하면 동티가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즈음엔 신구간 풍습이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제주지역 15만3000여 가구 중에서 2만여 가구가 일부러 이 기간을 택해 집을 옮겼다고 전해진다. 신구간에 너나없이 새해를 준비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신구간이 끝나면 곧이어 입춘이다. 입춘이 되면 하늘로 올라갔던 신들이 인간세계로 내려와 좌정을 한다.

입춘날을 맞아 제주민속촌을 찾으면 입춘첩 써주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샛절 드는 날인 입춘날에 새철이 들기 전에 이웃에서 빌려온 물건도 돌리고 꿔온 돈도 갚고 모든 것을 청산해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려 했다. 집안 곳곳에 입춘서를 써서 붙였고 입춘굿을 하며 사람사는 세상을 통치하기 시작하는 신들에게 한 해의 무사태평과 제주도민들의 안녕을 빌었다.

입춘날이 오면 제주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입춘서를 썼다. 대문, 고팡문, 정짓문, 쉐마귀, 기둥 등 붙일 곳이 다르고 크기와 모양새, 글귀도 각각이었다.

현용준 선생의 '제주도 사람들의 삶'(2009)을 보면 대문에는 '건양다경래백복(建陽多慶來百福, 양기가 서니 경사로움이 많아 백가지 복이 오고) 입춘대길거천재 (立春大吉去千재, 봄이 오니 크게 길하여 천가지 재해가 물러간다)'같은 시구를 붙였다. 고팡문에는 '당우오백년태평(唐虞五百年太平, 요순 때는 오백년이 태평하고) 농상삼만리풍등(農桑三萬里豊登, 농사는 삼만리에 풍년이 들었네)' 등의 글귀가 맞춤했다.

장소에 적합한 시구로 어느 것이나 운자가 들어맞고 안짝과 바깥짝의 대구가 딱딱 맞는다. 하얀 종이에 쓴 입춘서를 붙여놓으면 집안도 자연스레 밝아졌다. '새해가 왔구나', '봄이 오는구나'하며 마음이 설렜다.

지금은 입춘이 드는 시간도 모르고 입춘서를 써붙이는 일도 잊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올해는 신구간과 입춘으로 이어지는 봄의 제전을 소중한 이들과 더불어 즐겨보자. 제주민예총이 무술년 탐라국입춘굿을 펼치는 등 입춘 행사가 잇따른다.

1960년대 눈보라가 몰아치는 신구간 이사 풍경. 제주도가 펴낸 '제주 100년'(1996)사진집에 실린 사진이다.

입춘굿은 제주목의 목사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제주 사람들이 한데 치르는 고을굿으로 조선후기까지 이어져왔다고 전해진다. 낭쉐코사, 낭쉐몰이, 입춘굿, 뒤풀이 등으로 짜여져 무속굿을 중심으로 의례가 행해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사라진 입춘굿은 1999년 제주민예총이 복원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맥이 끊겼던 전통사회의 입춘굿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 제주시 원도심 축제로 내실을 다져왔다.

2018년 탐라국입춘굿은 2월 2일 거리굿을 시작으로 4일까지 3일동안 제주목관아 등 제주시 일원에서 펼쳐진다. 첫날에는 오전 9시 춘경문굿을 시작으로 세경제, 입춘거리굿, 낭쉐코사가 마련된다. 둘째날에는 입춘휘호, 관청굿, 열림난장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입춘날인 마지막날은 입춘굿, 추물공연, 입춘탈굿놀이, 세경놀이, 낭쉐몰이 등이 진행된다. 2월 3~4일 이틀동안엔 오전 11시부터 입춘 천냥국수, 소원지쓰기, 꼬마낭쉐 만들기 등 복을 부르는 먹거리와 체험 행사를 다채롭게 풀어놓는다.

입춘 전 신구간 기간에 맞춰 제주중앙지하상가에서는 탐라국입춘굿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민참여 축원마당이 차려진다. 오후 5~7시 방문객 대상 소원지 쓰기 등이 예정되어 있다. 2월 1일에는 관덕정 마당에서 기원코사와 춘등걸기가 마련된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제주민속촌에서는 2월 3~4일 이틀동안 2018년 무술년 모든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입춘첩 써주기 행사'를 연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행사장을 방문하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입춘 글씨를 가져갈 수 있다. 제주민속촌은 "세시풍속 입춘첩 행사를 통해 겨울 동안 묵었던 액운을 물리치고 봄의 기운을 받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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