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人터뷰] 고명희 제주여성인권상담소 시설협의회장

[한라人터뷰] 고명희 제주여성인권상담소 시설협의회장
“왜 이제야 말하냐고요? 이제서야 사회가 듣고 있는 겁니다"
[오늘 110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 입력 : 2018. 03.07(수) 2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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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희 제주여성인권상담소 시설협의회장이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최근 '제주에서의 미투운동' 관한 의견을 밝혔다.

"제주 '괸당문화'가 미투선언 힘들게 해
고발 넘어서 일상의 변화를 이뤄내야"

최근 자신이 겪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하는 이른바 '미투(#me too) 선언'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세계여성의날은 지난 1908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된 국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7일 고명희 제주여성인권상담소 시설협의회장(48)을 만나 '제주에서의 미투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 회장이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1990년대 초 제주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졸업후 자연스럽게 제주여민회에서 활동하다가 두 딸의 엄마가 됐다. 2001년 여민회 부설 성폭력상담소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성폭력 상담가로 활동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1995년 제주여민회 부설 제주여성상담소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06년 6월에 독립된 기관인 '제주여성인권연대'로 문을 열었다. 고 회장은 창립회원으로 2007년 3월부터 2015년초까지 부설 여성상담소장을 맡았다. 지난 2016~2017년 여성인권연대 대표에 이어 현재는 제주여성자활지원센터장으로 있다.

"피해자들을 향해 '왜 이제야 말하냐'고요? 그들은 지속적으로 말하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싸워왔습니다. 이제서야 사회가 듣고 있는 겁니다." 고 회장은 가장 먼저 "왜 이제야 말하냐"고 하는 이들의 시선을 비판했다. 고 회장은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마음의 상처를 쉽게 치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고통받았지만 이제라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고 회장은 "사회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미투선언'을 주목하고 함께 '위드 유'하고 있지만 한번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강남역 살인사건''장자연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은 있어왔고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는 것이다.

제주의 다양한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인권을 함께 이야기 했던 만큼 지금의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제주여성의 삶 이면에는 가부장제 사회 속 일상적인 폭력과 버거운 노동을 참아내야 했던 슬픔이 있다는 것이다. .

'피해자들이 숨고 말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던 것처럼 고 회장도 '성폭력상담소장'이라는 직함을 이야기하면 경계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미투 선언이 이어지면서 여성동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을 하면 일부는 '앞으로 여직원하고 멀리해야겠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오히려 이것이 여성을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따돌리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여성을 배려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소통·인권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소통하거나 격려하기 위한 행동이 문제가 있다면 이같은 일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고 회장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상담사례를 묻자 그는 "상담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의 방어권'을 더 강조한 법체계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속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고 회장은 "분명 제주라는 지역사회의 특성상 '미투'가 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싸움으로 변질되고 '괸당사회'로 해 피해자라고 나서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고 회장은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다양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권력(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 회장은 끝으로 "'미투운동'의 결과가 '고발'로 끝나서는 안된다"며 "어떤 사람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고발,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발, 사회의 체질개선으로 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앞으로도 성폭력 피해여성들,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할 것이다.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소명으로 체화됐음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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