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ED지상전] (3)박성진의 ‘사려니-가을’

[갤러리 ED지상전] (3)박성진의 ‘사려니-가을’
숲속 무질서한 나무와 풀의 흔들림
  • 입력 : 2020. 12.31(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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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주대 교수로 부임한 해는 1995년. 서울에 있는 동안엔 사람이 먼저 보였지만 제주에선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군상을 그리던 그는 차츰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주에 온 지 5년쯤 뒤 개인전을 열 때는 인물 작업의 한편에 제주 풍경이 자리하게 되었다. 제주대 미술학과 박성진 교수다.

갤러리 이디 초대전 출품작은 50호 크기 '사려니-가을'과 12호 '사려니-가을' 등 4점이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것들로 갈색의 사려니, 푸르른 사려니 등 각기 다른 빛깔로 사려니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이중에서 '사려니-가을'(2020)은 단풍이 든 숲을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작품이다. 제주 정착 초기에 물찻오름 탐방을 계기로 해뜨기 전 사려니숲을 종종 찾았다는 작가는 거기서 얻은 감흥을 언젠가 화폭에 담으리라 생각했다. 오늘날처럼 방문객들이 밀려들기 전의 사려니였다.

작가는 점점이 찍힌 붓질로 사려니숲이란 공간을 불러왔다. 화면을 응시하노라면 숲 안에 무질서하게 자라는 나무와 풀들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흡사 군상처럼 숲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존재들은 복잡다단하다.

20년 넘게 제주 풍경을 붙들어온 그의 고민은 "어떻게 다른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가"였다. 근작에서도 사려니, 돌담, 억새 등을 각기 다른 얼굴로 등장시키는 등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현돈 평론가는 "박성진의 풍경화가 우리를 낯설게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갖는 미니멀한 요소 때문"이라고 했다. 김 평론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기자기하게 재현한 자연주의 풍경화도, 산산한 바람의 역사를 담아낸 리얼리즘의 풍경화도 아닌, 박성진이 그려낸 제3의 제주 풍경화는 어쩌면 이 화산섬 제주에서 대립과 상쟁이 없었던 역사시대 이전의 무구한 순수자연을 그만의 시각으로 붙잡아 내려는 조형적 탐색 작업일지도 모른다"는 평문을 남겼다.

박 교수는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제9회 투즐라 국제초상그래픽&드로잉비엔날레 대상, 한국현대판화가협회공모전 우수상 경력이 있다. 개인전 횟수는 37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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