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서귀'에 실린 풍경. 작가는 회복과 돌아보기의 여행지인 '서귀'로 이끈다.
여기,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자는 처가 도움으로 성공하려는 야망이 있으나 그것이 옳은 일인지 자문한다. 여자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으로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들의 발길이 닿은 곳은 서귀포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자가 된 두 사람에게 서귀포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까.
서귀포 출신 강홍림 작가가 이런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는 '태풍서귀'를 냈다. '아버지의 바다', '태풍서귀' 등 짧은 소설 두 편이 묶인 책이다. 소설 형식으로 코로나 시대 새로운 여행 콘텐츠를 모색한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더해 1박 2일 동안 돌아볼 수 있는 서귀포로 독자를 이끈다. '서귀'의 한자어는 '서쪽으로 돌아가다'는 의미다. 작가는 '서쪽'에서 서방정토를 떠올리고, '돌아가다'에서 끝내 다다를 희망을 읽는다.
'아버지의 바다'의 주인공은 정방폭포를 출발해 서복전시관, 소남머리, 자구리, 이중섭거주지, 솔동산, 천지연폭포, 새연교, 새섬으로 차례차례 이동한다. 걸어서 약 2시간이 걸리는 총 6.8㎞ 코스다. 이 과정에서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공간이 이중섭거주지다. 남자는 가족 사랑이 지극했던 이중섭의 삶에서 아버지를 본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서쪽'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태풍서귀' 속 여자는 천지연폭포 주차장에서 남성마을, 황우지, 외돌개, 돔베낭골, 속골, 서건도, 강정천, 길거리 성당, 강정평화센터까지 걷는다. 모두 합쳐 11.5㎞ 길이로 도보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태풍이 올 때마다 중계 카메라가 모여드는 법환포구 등이 있는 이 구간을 통과하며 여자는 서서히 주변 사람에 대한 증오를 지워 간다.
강 작가는 "사는 동안 인생태풍을 겪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라며 "소설을 통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우리 시대 태풍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과사람들. 2만5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