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미국은 어쩌다 조세 정의의 희망 꺾였나

[책세상] 미국은 어쩌다 조세 정의의 희망 꺾였나
사에즈 등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 입력 : 2021. 04.16(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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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인하에 조세 회피 증가
누진적 소득세 복원 등 주장


그들은 1913년부터 지금까지 한 세기에 걸친 통계 자료를 수합해 미국의 최고빈곤층부터 막대한 재산가들까지 각각의 사회집단이 얼마나 세금을 내고 있는지 추산했다. 그랬더니 1970년에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은 소득의 50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에는 트럼프가 세제개혁을 하면서 지난 100년 이래 처음으로 억만장자들이 철강 노동자, 교사, 퇴직자들보다 세금을 덜 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누진세율로 조세 정의의 희망을 보여줬던 미국이 어쩌다 엄청난 슈퍼리치들이 내야 할 세금을 깎고 또 깎아주는 나라가 되었을까. "세금 문제에서 불의가 승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경제학 교수 이매뉴얼 사에즈와 게이브리얼 저크먼이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를 통해 조세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살피고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조세 체계를 모색했다. 정의롭지 못한 조세 정책이 미국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세계화와 누진세의 양립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세율을 낮춰 조세에 순응하도록 유도해도 세액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1981년 레이건 정부 시절 최상위 구간 소득세율을 7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낮췄을 때 조세 회피가 크게 증가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누진적 소득세야말로 부의 집중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도구라고 봤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소득세의 대상이 될 만한 소득은 그리 많이 벌지 않는 이들을 겨냥한 부유세도 주장했다.

"세계화라는 것이 거대 다국적 기업의 소유주들에게 점점 더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세계화의 혜택을 못 받는 노동계급의 가족들에겐 더 높은 세금을 물리는 것을 뜻한다면, 세계화에는 미래가 없다"는 두 사람은 세율 인하 경쟁을 중단하는 국제 협력 방안도 내놨다. 자국의 다국적 기업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회사를 두고 영업하건 실질적으로 25퍼센트의 세율을 부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혹, 조세 도피처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자유무역에 거스르는 범죄라고 주장하는가. 저자들은 이들에 대해 "세계화의 수호자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노정태 옮김. 부키. 1만98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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