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역사'를 알아야 ‘나만의 역사' 만들어져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지금과도 연결되어 있어
건강한 역사적 이해 바탕 현실의 난관 딛고 미래로
우리나라 근대사를 개인의 역사, 공동체의 역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자발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대량생산과 도시화를 어렵게 겪어 낸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알려주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고 지금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 전우용, 출판사 푸른역사>
▶대담자
▷신은실 :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위원
▷이승규 : 연서단 리더. 전 건국대학교 공예과 강의, 현 서귀포시 대천동 통장
▷용회수 :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제주지부 서귀포지회 활동
▷노은영 : 제주 독서모임 회원. 유기동물 활동가
신은실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위원과 연서단 회원들이 '내 안의 역사'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신은실(이하:신): SNS를 통해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시점에서 과거 읽기를 하는 의미는 무얼까?
▷노은영 : 개인 방송의 양적 증가로 사회적 이슈는 무한대로 해석이 가능해졌다. 지난 일을 다시금 살펴보는 이유는 나를 만들어낸 '내 안의 역사'를 알아야 내가 만들어갈 '나만의 역사'가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를 지탱하는 뿌리인 일반서민의 생활사가 많이 나오고, 그 시대의 생활상과 내 경험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또 다른 연결을 궁금해하며 읽게 되었다.
▷이승규 : 제주에 살기 전에는 4·3에 대해 잘 몰랐다. 세상의 진영 논리는 바뀌고 70년이나 지났는데 제대로 된 역사 인식에 의한 역사 바로잡기를 하지 않아 제주 4·3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는 현실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용회수: 우리나라에 근대사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수탈의 역사이다. 반면 세계적 근대사의 흐름은 계몽주의가 유럽에 근대정신을 유럽에 확산시켰고, 산업혁명,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근대정신을 구체화한 성취였다. 반면 서구 선진의 영향을 먼저 받은 일본은 우리나라에는 근대성의 악한 영향력인 식민지근대화, 차별과 억압, 폭력을 남겼다. 이 책을 통해 만약 우리나라가 자발적인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문화와 경제의 순기능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는 멋진 선진문화를 남겼을 것이다.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하다.
▷신: 책 내용 중 유익함과 유쾌함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해준다면.
▷이승규: 나가사키에 미국인이 잡화점을 열었는데 일본인들에게 가장 탐나는 물건은 가죽 신발이었다. 한 일본인이 그 신발을 사기 위해 미국인 주인에게 말을 걸었으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파는 게 무엇이냐 묻는 것으로 생각한 주인은 영어로 'goods'(잡화)라고 대답했다. 일본인은 그렇게 생긴 신발을 '굿쯔'라고 하는 줄 알았다. 이후 일본인들은 굽이 달린 신발을 '구츠'라고 불렀고, 이 말이 한국에 들어와 구두가 되었다.
▷용회수: 거지의 옛말이 깍쟁이인데,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거지가 서울 시민을 대표할 정도로 많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쌍팔년도'는 서기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년이었다.
▷노은영: 지석영의 우두법이 인상적이었다. 최초의 전염병이자 최초의 백신이 만들어진 천연두는 치사율이 높고 치명적이었다. 지석영이 개인적으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보급, 전파하였고 그의 활동에 힘입어 정부 사업으로 승격시켰다. 전염병은 전쟁 못지않게 파괴적이다. 코로나19와 연관되어 생각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생겨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신: 화폐를 돈이라고 하는 이유가 돌고 돌기 때문이 아니라 금, 은 금속을 재는 단위인 '돈'이며, 한자 돈 전(錢)은 쇠 금(金)과 상할 전(잔)을 합친 글자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돈은 좋아하나 천하게 여겨 직접 들고 다니지 않았으며, 돈을 지키고 담당하는 노비인 수전노를 거느렸고, 본인 소맷자락에 넣고 다닐 때 강도들이 돈이 든 두둑한 긴 소맷자락을 치고 줍는 행위에서 '소매치기'라는 말이 생겼다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용회수: 일제가 독립이라는 말에 과민했으면서도 독립문을 보존한 이유는 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 독립문은 청나라와의 사대관계의 단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했으며, 러시아인이 설계했고, 감독은 한국인 대목이 맡았으며, 유럽식 건축공사에 능숙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지었다.
▷신:'내 안의 역사'를 읽고 역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한 것이 있나?
▷노은영: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다시는 5·18이나 세월호와 같은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승규: 그간 역사란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의 중요한 사건의 설명이 아니라, 사소함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욕구, 결핍으로 인한 선택, 현재와의 관계 등을 통해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1년, 현재도 개인과 공동체의 바람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이라는 점에서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인간만이 경험을 통해 문화를 창조하고 새로 써나간다.
우리 모임에서 다룬 미술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건물이 완성되었으나 돔을 만들 기술이 없어 100여 년간 완공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 이유는 돔을 지탱할 기술적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돔이 열려 있는 성당을 보며 끊임없이 연구했을 브루넬리스키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판테온의 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성당 완성을 140년 만에 이룬다. 이 혁신은 다시 150년 후 미켈란젤로에게 전해져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올릴 수 있는 모티브가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소환하며 향유하는 건강한 역사적 이해는 현실의 난관을 이겨내고 미래의 가치로 연결된다.
▷신: 책의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인류 역사의 본류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는 평범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결국 역사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인 것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역사의 주인공이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책과 연애하는 모임 '연서단(戀書團)'
책 좋아하는 주부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세계사를 통해 인류가 이룩해낸 문명의 다양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스터디모임이다.
혼자 읽어낼 수 없고 벽돌 중의 벽돌인 책, 미술의 역사이자 미술 입문서인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깊이 있는 강의에 힘입어 1년이 넘게 함께 공부하였고, 동·서양 문명의 충돌인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사'로 이어지는 중이다. 모임을 할 수 없는 현실에 각자 보충 서적을 읽는 중이지만, 세상의 오래된 진실을 통해 현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책 읽기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