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제주 토박이의 눈으로 사진에 담은 '세한도'

[책세상] 제주 토박이의 눈으로 사진에 담은 '세한도'
강정효 흑백 사진집 '세한제주(歲寒濟州)'
  • 입력 : 2021. 08.2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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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세한제주' 수록작. 강정효 사진가는 "만약에 추사가 제주의 실제 풍경을 세한도에 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리며 '세한제주' 작업을 벌였다.

추사 제주 유배가 낳은 세한도
실제 제주 풍경을 그렸다면…


그것들을 '한 폭의 수묵화'에 비유할 수 있겠다. 종이에 먹으로 그려낸 흑백의 고요한 풍경을 닮았다. 하지만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다보면 그 '수묵화'에 이 땅의 현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뜻하는 표제처럼, 세찬 변화와 개발이라는 찬바람과 마주하고 있는 이 섬의 오늘이 있다.

'한라산', '제주거욱대',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 '폭낭' 등 글과 사진으로 제주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알려온 강정효 사진가. 그가 이번엔 사진집 '세한제주(歲寒濟州)'를 냈다.

'세한제주'는 영문을 포함 6쪽 분량의 텍스트를 제외하면 오롯이 흑백사진으로 채워졌다. 사진에 얽힌 사연을 문장으로 수다하게 풀어내진 않았으나 흑백의 화면은 참으로 많은 말을 쏟아낸다.

왜 '세한제주'일까. 19세기 제주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남긴 '세한도(歲寒圖)'가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국보인 '김정희 필 세한도'는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추사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문화재청)이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고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해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준다.

그림의 끝부분에는 김정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제주 유배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스승을 잊지 않고 챙겨준 제자 이상적에게 이 작품을 선물하면서 추사는 논어에 나오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를 인용했다. "추운 겨울이 돼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름을 알 수 있다"는 세한도의 의미는 지조와 고결함을 넘어 모진 세태 앞에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강정효 작가는 '세한도'를 '세한제주'로 바꿔 제주 풍경을 이입했다. 제주에서 그렸다고 하나 섬의 '얼굴'이 없는 '세한도'를 보며 그는 "만약에 추사가 제주의 실제 풍경을 세한도에 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렸다.

강 작가는 2016년부터 올해 1월까지 눈 내리는 찬 계절에 맞춰 제주 섬을 누볐다. 약 90점이 펼쳐지는 '세한제주' 연작에는 '세한도'의 한 장면과 유사한 나무와 집이 등장하지만 거기에 없는 것이 있다. 제주 땅의 역사와 함께해온 구불구불한 돌담이다. 제주 섬 사람들이 화산토를 일구며 쌓은 그 돌담 위에 하이얀 눈이 내려앉았다. 때로는 풍력발전기, 전봇대, 송전탑 등이 저 멀리 배경처럼 서 있다. 오늘도 도로를 내기 위해, 건물을 짓기 위해 쉼없이 땅을 파고 있을 굴착기도 눈에 들어온다.

그는 "외부인의 시각이 아닌,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토박이의 관점에서 제주의 세한풍경을 자랑하고자 한다"며 "제주다움과 더불어 돌담이 담아내는 추운 겨울날의 강인함까지 담아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그루. 2만5000원. 출판사에선 이달 20일까지 저자 서명본을 주문받고 있다.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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