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제주에서 발칸까지 슬픔 끝에 다다를 그날

[책세상] 제주에서 발칸까지 슬픔 끝에 다다를 그날
4·3평화문학상 이성아의 장편 '밤이여 오라'
  • 입력 : 2021. 12.1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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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제주4·3평화공원 각명비 앞에 섰다. 엄마 뱃속에서 미처 나오지도 못한 채,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영혼들을 보며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거기엔 나이와 남녀를 불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이들의 이름이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듯 했다.

발칸에서 제주를 보았고, 제주에서 다시 발칸을 보았다는 이성아 작가. 그가 쓴 장편소설 '밤이여 오라'는 지난 3월 발표된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폭력의 실상을 담고 있다.

'밤이여 오라'는 "내전과 인종청소의 참혹한 시간을 통과해온 발칸반도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세심하게 공명시키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질문을 더 넓은 시야로 성공적으로 옮겨낸다"는 평을 들었다. 소설은 4·3피해자의 후손이자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독일어 번역가 변이숙을 중심으로 4·3에서 발칸까지 이르며 우리가 외면해왔고 등한시했던 이들의 사연을 불러냈다. 그들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지금도 어느 곳에선 '정의'라는 이름으로, 혹은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고 있는 국가폭력이라는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문장을 인용해 "삶을 이토록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라고 물으면서도 국가폭력을 분노와 탄식만으로 결론 짓지 않는다. 주인공 변이숙이 제주로 향하면서 "저 섬의 모진 시련이, 오히려 나를 단련시킨 건 아니었을까"라고 했듯 작가는 참극의 슬픔이 이해와 연대로 확장되며 그 폭력을 온전히 멈추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한다. 은행나무. 1만4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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