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돌리다 투명한 어떤 연속무늬에 눈이 번쩍 가듯 나는 정지된다. 스톱! 두봉 신부님이 90세의 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고, 프로그램 내용은 다큐 비슷한 것이어서, 검소한 선으로 형태를 이루고 순수한 빛으로 감싼 어떤 인간이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감회가 적지 않았다.
문음사 편집주간을 할 때 초대 안동교구장이었던 두봉 신부님을 찾아가 하룻밤을 같이 보낸 적 있다. 당시 신부님은 '파리 외방전교회 마지막 선교사'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계셨다. 농촌을 사랑하고 어려운 카톨릭농민회를 뒷받침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추방 명령을 받기도 해 고난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많이 늙으셨되, 그분에게 아기 같은 맑은 웃음과 유머는 변하지 않는 것이었나 보다.
예전 문음사는 한남역 근처에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해 신문을 보다 두봉 신부님의 글을 읽고 몸과 마음이 그리로 새어나가는 느낌을 끌며 나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바로 안동으로 내려갔다. 물론 전화로 용무를 밝히고 갔다. 저녁 무렵 도착해 성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쓴 글들을 묶어 빠른 시일 안에 책을 내기로 계약을 한 다음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했다. 무어라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건 진짜 노는 것이었다. 그분은 거의 본인이 하는 말과 몸짓 등 행동에 대해 일치하는 감정을 가진 듯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각자 자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날 밤은 토를 달 수 없는 어떤 순수하고 명쾌한, 세상 벗과의 술자리와 다름없었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운 게 사실인데, 아마 그 와인은 미사용 와인이 분명했으리라. 텅 빔과 충만이 교차하는 듯한 그분과의 시간은 사랑스러웠고, 그리고 살그머니 잇새로 빠져나오는 서툰 한국말의 뉘앙스는 프랑스말의 뉘앙스를 섞은 것이었다.
이렇게 술을 마신 다음에 이제 각자 방에서 자는가보다 라고 생각한 것은 또 나의 오산이었다. 이번엔 창가에 작은 책상과 낮은 서랍장 하나만 있는데 반대쪽에 전자 피아노 한 대가 구석에 있는 당신의 방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 노래 좀 부를까요?”하셨다. 이어서 건반을 두들기며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을 부르시고 손짓을 해가며 내게 노래를 청했다.
지금 은퇴해 안동 근처 의성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세상 산책을 이어가는, 그 고운 미소를 흩날리는 당신 앞에서 나도 어린애처럼 미소 지을 뿐인데, 나는 당신과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던 신부님을 찾아 길을 나서고 싶다. 변하고 지나가버린 추억의 빛 속으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