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작별하지 않는다

[김양훈의 한라시론] 작별하지 않는다
  • 입력 : 2024. 12.05(목) 01: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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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위 구절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쓴 시의 제목이다. 이토록 긴 제목에 달린 시의 내용은 달랑 두 구절이다.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시의 제목은 목숨처럼 지어야 한다." 어느 시학 강의에서 들은 말인데, 제목 하나로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한강이나 되는 시인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의 봄바다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이 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돈오(頓悟)의 순간이라도 기대하는 것처럼, 나는 시를 통째로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몇 번이나 곱씹어도 봤다. 제주의 봄바다는 주인공에 닥쳐온 절망과 슬픔을 햇빛과 바람으로 씻어줬다. 하여 주인공은 새로운 삶의 각오와 함께 생명의 덤을 얻는다. 그런데 날아가는 어린 새와 마르지 않은 눈물? 놓친 무엇인가 있는 것 같다는 찜찜함이 남는다. 이러는 게 다 '시적 산문'이라는 그의 소설을 온전히 읽고 싶어서였다.

노벨문학상 위원장은 노벨상 수상 발표문에서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습니다"라 했다. 이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매우 적확한 평가였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심사위원들이 긴 시간 그의 작품들을 얼마나 꼼꼼히 읽고 깊이 이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사람들, 특히 제주 출향인들 가운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단숨에 독파한 이는 거의 없었고 중도에 읽기를 포기한 이도 몇 있었다.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 찬 이야기라서 읽기 어렵다'라든지, '맥락이 없어 읽기 불편하다'라는 것이었다.

서울에는 8년째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4·3문학회'라는 독서회가 있다.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설립 취지다. 지난달 정기모임 과제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다시 읽기'였다. 세 시간 동안 각자 독후감을 발표한 후 열띤 토론이 있었다. 소설 속 시적 은유를 찾아내는 집단지성이 놀라웠다. 혼자 끙끙대던 몇 가지 궁금증을 이해하게 됐고 어떤 부문에선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마저 이해할 때까지 여섯 번은 읽어볼 생각이라는 어느 회원의 각오도 있었다.

동짓달 긴긴밤이다. 오붓하게 한데 모여 차라도 마시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독후감을 나누기에 딱 맞춤인 계절이다.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지극한 사랑'이 무엇인지 머리 맞대고 찾아보는 것이다.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인선이 경하에게 독백처럼 해주던 말이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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