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햇빛이 길게 들어오는 그해 초가을 내가 근무하는 청하출판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광협 선생님이었다. 보내드린 내 등단시집을 읽었다며 "한 번 들르라."는 내용이었다. 동아일보사에 근무하시던 선생님을 뵌 것은 며칠 후 종로 뒷골목 어느 해장국 집이었다. 지금 교보빌딩이 서 있는 부근 어디쯤이었다. 그리고 일대에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곳들이 많다며, 점심을 먹고선 인사동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찻집에서 문청시절 내가 좋아해서 자주 끼고 다니던 시집 '천파만파'에 사인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그때 선생님은 "남들은 냄새가 싫다지만 내겐 익숙하고 정이 든 인쇄소 냄새와 시집의 종이 냄새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하셨다. 신문사 인쇄 냄새는 고단한 밥벌이 냄새일 터이고, 책에서 나는 냄새는 인간다움을 가리키는 냄새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삶에 영감을 주는 종로 일대와 빗물이 몰려 내려가는 남산 비탈길 같은 소소하고 쓸쓸한 풍경들을 찾아가며 산다고 하셨다.
찻집에 앉자 있자니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말이 있으며, 선생님을 아는 분들의 사소한 안부와 눈인사가 있으며, 자리를 일어나야 할 때가 된 시간과 더 머물고 싶은 마음 사이의 긴장과 포기가 있었다. 밖으로 나와 안국동 쪽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자 나무 아래 새소리가 있고, 골목을 집 삼아 싸다니는 검정 개가 보였다. 근년에 나왔다는 제주 민요시집 '돌할으방 어디 감수광'을 한 손에 받아쥐고 나는 중년의 디테일이 묻어나오는 시인을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가며 생각했다. 지금 제주는 귤림추색(橘林秋色)이리라.
그리고 내가 목포대학교 출강을 하며 강진에 살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투르게네프 산문시' 번역판이 나와 주소를 묻는 전화였다. 선생님은 몸이 편찮아 제주집에 와 있다고 하셨다. 아차, 하고 한 번 발을 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테고 모든 만남은 이별이 될 터인데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제주의 향기가 아닐까, 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따사로운 봄날, 제자의 서귀포 감귤농장에 들렀다 선생님의 시비가 있는 호근동에서 잠시 쉬었다. 오일육도로를 타기 위해 한라산을 올라가자 임시적이지만 나의 공간, 내 마음이 세들어 사는 공간인 한라산 자락과 서귀포 바다는 신생한 나뭇잎들 사이로 떠올랐다.
예술이란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골목길을 서로 다르게 걷는 것이다. 이 섬에서 네 번씩 이사를 다니며 제주에 정착한 나의 9년 세월의 풍랑은 시를 쓰며 혼자 웃는 시간이었다. 내겐 우연히 그곳에 있을 뿐이라고 할 만한 삶터들이 유독 많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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