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림의 현장시선] 제주형 ‘그랑프로제’가 필요하다

[고영림의 현장시선] 제주형 ‘그랑프로제’가 필요하다
  • 입력 : 2022. 08.12(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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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그랑프로제'(Grand Projet)가 있다. 문화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통령 주도의 건축물 프로젝트다. 전임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시작하고 미테랑 대통령이 완성한 오르세미술관, 파리 동남부의 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결한 국립도서관(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 대표적 사례다. 파리의 센 강변에 폐쇄된 상태로 방치됐던 오르세 기차역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했고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책을 펼쳐놓은 모양의 건축물 4개 동으로 이뤄진 국립도서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지구가 조성됐다. 필자는 파리에 갈 때마다 이 두 건축물은 반드시 들른다. 문화건축물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제주는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구호를 표방하고 있다. 한국의 어느 지방이 이런 구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에서 문화와 예술을 풍요롭게 누리고 있다고 자부할 만한 멋진 구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직선제로 여러 명의 도지사를 선출해 들어선 전임 도정들이 제시했던 문화예술 공약과 정책들이 이 구호가 내거는 만큼의 자부심과 긍지를 과연 도민들에게 돌려주었는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의견 청취, 도정 정책 맞춤형이 아닌 실현 가능한 전문적 제안, 실행 단계마다 도민들에게 검증받는 투명한 절차 등이 필요하지만 부족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1년 예산의 2%도 되지 않는 문화예술예산을 놓고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는 현실에 속 쓰리다. 프랑스 동북부에 있는 알자스지방의 중심도시 스트라스부르의 1년 예산 중 20%가 문화예술분야에 사용되고 있는 예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제안한다. 제주형 '그랑프로제', 다시 말하면 제주도지사가 주도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민선8기 도정 비전은 '위대한 도민 시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로 내 걸었으나 문화예술을 위한 도지사의 철학과 비전은 무엇인가. 일회성 이벤트들은 지양하고 제주를 대표하는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 차별성 있는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정책을 해마다 점검하면서 예산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노력 역시 당연한 일이다.

민선8기 도정은 임기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욕구를 자제하면서 지속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결정 과정을 거치는 민주적인 절차로 이전 도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도내 문화예술계의 쓴소리에 더 귀를 열고 분야별 정책 제안의 장을 최대한 많이 마련한다면 현장과 도정 사이의 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제주도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야 하지 않겠는가. <고영림 (사)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언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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