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디아스포라의 섬,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양건의 문화광장] 디아스포라의 섬,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 입력 : 2022. 08.23(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어느덧 일상화돼버린 기상이변으로 올여름도 지구는 유례없이 뜨거웠다. 너도나도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재충전의 시간을 계획한다.

그런데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줄 알았던 코로나19의 재확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럴 때는 자신이 살던 지역 안에서 관광객 코스프레하며 휴가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나 이런 여행의 흥미로운 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변의 사물과 장소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의 하나인 법환포구를 둘러봤다. 그동안 풍경에 빠져 인지하지 못했던 막숙포구의 역사와 포구 한편에 서 있는 '최영 장군 승전비'가 보인다. 이 비석은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1374)'을 평정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범섬에서 마지막 항쟁 중인 목호들을 치기 위해 법환포구에 막사를 구축했던 역사적 장소를 드러내는 표식이다. 이 진압 과정에서 제주민이 학살되는 비극이 있었음에도 이런 승전비가 제주 땅에 세워진 것에 의문이 들었다.

제주에 와서 100년을 디아스포라로 산 목호들의 삶은 제주 사회와 일체화돼 있었을 것이고, 돌아갈 곳도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난'이었을 것이다. 이는 당시 목호와 제주민에게 고려와 원의 정치적 구도에 앞선 생존의 문제였고, 그 삶을 지키려다 희생된 제주의 조상들을 기린다면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로 갑자기 여행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역사를 돌아보면 제주는 디아스포라의 땅이다. 고려 시대 몽골의 목호들, 조선 시대의 유배인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들, 6·25 전쟁의 피난민들 그리고 최근 제주 열풍이 불러온 신 디아스포라까지 그 경계와 정의가 확장 변이되며 제주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가 누적돼있는 섬, 제주에서 살아가는 혜안은 무엇일까?

다음 코스로 들른 '포도 뮤지엄'의 기획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전시는 디아스포라 개념의 외연을 확장한다. 전통적 의미로 자신의 터전에서의 물리적 이주와 새로운 정착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다층적 정체성과 결별한 이방인이나 소수자들의 삶도 그 범주로 정의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원인이 됐을 절박한 이슈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다양성에 대한 공존과 포용의 마음으로 이 땅에 같이하는 확장된 '우리'의 미래를 그린다. 미술관을 나설 때 즈음, 전시의 감동으로 법환포구에서의 어색함은 사라졌다.

그렇다! 디아스포라의 섬, 제주에 산다는 것은 서로가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내고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는 또한 갈등과 반목의 제주 사회에 "다 함께 미래로"를 선언한, 새로운 도정에게 거는 기대이다! <양건 건축학박사·제주 공공건축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69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