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좁은 밭담길로 잘못 들어 내 차는 산자락을 돌고 이윽고 비탈을 올라가 언덕까지 가서 간신히 시야가 트이는 평지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에 산막 같은 카페를 만났다. 사람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는 후미진 숲속에 활처럼 굽은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고 카페는 그 밑에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마치 정박한 배처럼 기우뚱해 보이는 목조 건물 후사면 한쪽으로 꽤 많은 봉분들이 펼쳐져 있는, '이상한 공간'으로 차를 몰고 온 우리는 조금은 당황했다. 약초를 이용한 차와 커피를 함께 파는 카페인데, 아내와 나는 먹던 대로 커피를 시켰다.
거기서 바라보이는 하늘은 흐리고 먼바다는 옅은 회색이며, 창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근처에 많은 봉분들이 있다는 사실도 시간이 좀 지나자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았다. 햇볕에 그을린 팔뚝에 새 날개 타투를 한 카페 주인은 무심한 얼굴의 중년 사내로 커피를 우리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 주방 쪽으로 가서 창밖을 본다. 마치 외따른 곳 텅 빈 공소(公所)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 같은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인상이나 눈초리 등 아무튼 어딘가 모르게 다른 점이 느껴진다. 카운터가 있는 벽 한쪽에 먼 바다 고깃배를 타고 있는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붙이는 성미가 못 되는 우리는 저쪽도 보아하니 손님과 대화를 즐기는 타입은 아닌 게 분명해 머리를 바싹 깎아 올린 그 사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커피를 마셨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여기에 있소? 그리고 대체 저 많은 봉분들은 당신과 무슨 이야기하고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이오? 그는 분명코 제주뿐 아니라 육지의 포구와 항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아마 약초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 이상한 풍경 속에 작은 카페를 열고 거기 붙은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을까?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지나가 버린 옛날과 일찍이 배 위에서 지낸 날들을 추억하는, 마침내 귀항지를 발견한 항해자인가. 계속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 어딘가에 닿을 것이고, 어떻든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인간은 꼭 훌륭할 필요도 유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며 이것이 나 자신이다, 라는 식으로 살면 되는 것인데, 하루 내내 멍하니 산자락이나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뭔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사유 안에서 보면 지루함도 번잡함도 없고, 툭하면 죽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진다. 다만 이렇게 조용히 살고자 하면 삶의 오랜 양식과 패턴을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조용히 살려면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