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지난 8월 초 태풍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슬프게 했다. 관악구 반지하 일가족 사망, 서초구 맨홀 남매 사망 등 자연재해를 막지는 못해도 한국의 기술력으로 대비가 가능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어제는 보육원을 퇴소한 보호 종료 청년이 통장에 1000만원이 넘게 있는 것을 모른 채 생활고를 한탄하며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삶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높은 물가에 놀라 마트에서 집었던 물건을 내려놓고 성인과 아이들이 인터넷에 빠져 있고 세대 간 대립, 빈부격차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가족' 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서양 사람들은 '나의 집, 나의 학교, 나의 가족'이라며 나를 중심으로 말을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더 정감 있고 이타심이 높을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우리라는 모습으로 포장하지만 마음 안에는 나, 나의 가족, 나의 것에만 집착하지는 않는가? 내 아이에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 등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 경쟁하느라 다른 집 아이가 반지하에 살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언젠간 무너지게 돼 있다. 반목(反目)과 갈등이 생기고 분리된 삶을 살게 된다.
코로나19를 보며 나와 너, 세계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멈추니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지 않으니 유럽은 에너지 대란에 놓이게 됐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은 우리나라 수출 시장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에서 코로나 이후 새로운 가치와 표준인 뉴노멀을 '전 지구적 나눔과 협력', 키워드는 '그린, 생명, 인류애'로 제시했다. 지젝은 "코로나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재해에서 비롯한 것이며, 지도에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인류 간 '나눔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이웃의 안전이 나의 안전이며, 지역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세계는 연결돼 있고 기후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더 커질 것이다. 다 같이 잘 사는, 다 같이 인간으로서 행복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함께 사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면 우리나라가 처한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집중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우리? 한국인이 말하는 '우리'안에 진짜 너, 나, 모두를 합한 우리가 있는가. 분열의 길을 걸을지, 글로벌 연대의 길을 걸을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글로벌 연대의 길을 선택했다면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예를 들어, 보육원이나 싱글맘 센터에 소액으로라도 정기후원을 하는 등 안전 사각지대의 이웃을 돌아보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기업 역시 과대 포장지 사용, 자원 남용을 지양하고 환경의 가치를 함께 추구했으면 좋겠다. <주현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재정정책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