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62)해변에 세운 옛집

[황학주의 제주살이] (62)해변에 세운 옛집
  • 입력 : 2022. 11.29(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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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바닷가 오르막길을 한 소녀가 두 아이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스쿨버스가 오는 해안도로까지 아이들을 바래다주는 단발머리가 목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숙인 소녀의 얼굴은 다소 피곤하고 굳은 표정이었다. 주방에서 잠시 올려다본 그 순간은 짧았고, 생식을 두유에 타 먹는 게 전부인 아침식사를 위해 나는 다도해 펼쳐진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어떤 바스락거림이나 팔랑거림처럼 잠깐새 언덕길을 올라가는 아이들은 내 눈앞을 지나쳤지만, 왠지 눈이 젖으면서 내 뒤에 남겨진 풍경은 나의 유년의 기억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보리밭을 지나 개울을 건너 학교에 가던 동생과 나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옷의 한자락이 끌려들어간 것 같이 유년의 어딘가에 붙들리며 사는 것이 인간의 일인지라 시간 속으로 재진입하거나 탈출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운 정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도의 빈곤과 폭력에 의해 숨통을 옥죄이던 가정에서 나의 유년은 행복할 수는 없었다. 집 마당에 들꽃을 심기 좋아한다거나 보이지 않는 바다를 꿈꾸며 살던 어린아이의 욕망과 자유는 그 치욕과 무관할 수가 없었던 것이리라.

제주로 이주하기 전 살았던 고흥 집 앞에 도로 측량이 진행된다고 해 6년여 만에 찾아온 옛집. 빈집은 훼손되지 않고 단단히 버텨 주고 있었다. 집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바라본 바다는 유순하고, 사람의 출입이 없는 해변은 여러 번의 태풍과 지난 시간의 흔적들로 어지러웠다. 방들과 서재엔 살다 몸만 빠져나간 표시가 역력해 모든 게 제자리에 있고, 침대방엔 내가 덮고 자던 이불이 싱글침대 위에 반으로 개어져 있었다. 어디로 가든 책 몇 권만 들고 가 삶을 이어가던 내 버릇에 따라 두고 간 것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대책 없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여러 해 고생해가며 바다와 절벽 앞에 콘크리트 집을 지을 땐 여기서 노후를 보낼 줄 알았다. 나는 왜 그렇게 굳게 믿었을까. 돌아보면 나의 집이란 아마도 내가 세상을 떠돌기 이전에 누렸던 행복한 삶이 없었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지은 것이고, 그래서 아직도 이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풍경은 흐르고 새롭게 바뀌고 풀려났다 맺어지며 창가에 닿는다. 해변이 마당인 고흥 집에서 볼 때 하나의 외곽선만을 두른 제주가 하나의 우주이지만, 제주 중산간 언덕 마을에서 볼 때 육지의 끝 고흥 절벽 밑은 또 다른 우주이다. 내게는 고흥 바다와 제주 바다가 형이상학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온전히 설명할 언어는 없다. 다만 어느 해 겨울 이 고흥 집을 비우고 제주도를 행선지 삼아 길을 나설 때 그것은 그동안 나를 옭아맨 오랜 언어의 사슬을 끊고자 했던 것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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