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0)대정읍 인성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0)대정읍 인성리
단산의 어진 정기 가득 품은 인심 1번지
  • 입력 : 2022. 12.30(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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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대정현성이 축조된 것은 조선 선조 때였다. 성담을 경계로 그 안에는 하나의 큰 고을이 형성된 것이다. 내부 구분을 동성과 서성으로 부르다가 1864년 고종 1년에 동성리가 인성리와 안성리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정성을 근거지로 하여 뻗어나간 마을 셋이 모두 성(城)자 돌림인 곳. 인성리, 보성리, 안성리는 크게 보면 한 마을 같아서 이 곳 사람들이 아니면 마을 구분이 쉽지 않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 이름이 달라지니 말이다. 그 중에서 인성리를 찾게 된 것은 단산과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가장 한반도 평야지대와 닮은 곳이 있다면 이 곳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농토는 평지이고 거기에 우뚝 솟은 단산이 있어서 야릇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단산은 '소쿠리 단(簞)'이다. 바굼지오름이라고 하는 연유도 이와 같으리라 여기며. 신기한 것은 어찌 조상들은 알았을까? 분화구와 소쿠리 모양이 흡사하거늘 지금의 외형상으로는 분화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 분화구를 품은 산이었다는 것을. 원래 바다였던 곳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이나 응회구의 퇴적층이 수십만 년에 걸쳐서 침식을 거듭한 결과 분화구의 일부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 산세를 굵게 파악하는 제주 선인들의 시각이 놀랍다. 단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은 독특한 경이로움을 제공한다. 단산의 지경은 마을 두 곳의 경계다. 남쪽은 사계리, 북쪽은 인성리라고 하니 안덕면과 대정읍이 단산을 경계로 나뉘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마을이어서 대대로 강직하고 의로운 성품을 가진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의사비'에 얽힌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이재수의 난으로 기억되는 역사의 무대가 대정고을이기 때문. 강우백, 오대현, 이재수 3인의 장두를 한양으로 압송하여 처형하였지만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의로운 항거의 주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이재수의 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어진 사람들이 살아서 인성리다. 마을 안길을 다니다보면 그 편안함과 어떤 평화로운 기운이 비단 지형적인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풍겨지는 그 무엇. 보성리, 안성리 사람들과 대정고을과 관련한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치열한 논의 과정에서 주장은 주장대로 하지만 결국 양보의 미덕으로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로 인성리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정향교로 상징되는 유교적 겸손의 터전이기에 그러한 자세와 품성이 기름진 농토처럼 펼쳐진 마을.

마을 안길엔 정갈함이 있다.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지키려는 마을공동체의 묵시적 전통.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인격도야의 깊은 자기관리 능력이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정향교와 추사기념관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마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걸맞은 인성수련관 같은 시설이 있을 만 하다. 어질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청소년들이 배우러 오는 곳. 어른들 또한 어떠랴마는.

이상봉 이장에게 인성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이 무엇인지 물었다. 단박에 나오는 한마디는 "인심이지요." 인심 좋은 곳이라는 것을 다른 마을에서도 모두 인정하고 있기에 자신감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인심에서 찾고자 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확고하게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자세야말로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핏줄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단산에 올라 인성리를 내려다본다. 도드라진 건물이나 눈에 띄는 건물이 없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조화.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행복하겠다.'는 부러움이 일어난다. 단산이 지닌 가장 큰 관광자원은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 환경적 요인에서 어떤 삶이 구축되어 가는 것인지 느끼게 되는 곳. 내가 꾸는 거창한 꿈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모여 함께 꾸는 꿈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시각예술가>

이웃하여 사는 모습
<수채화 79㎝×35㎝>


마을 안길을 걸어가다가 비교적 너른 공터에 주차공간이 마련되어져 있고 차분하게 들어선 집들과 담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해가 등뒤에 있어서 명암법을 가지고는 존재감을 평면 속에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그 어려움이 발생시키는 극복 방안에서 야릇한 창작욕구가 생성되었다. 눈높이 기준 소실점은 하늘과 땅이 화면의 상하 절반 지점에 있도록 하고 그 사이에 집이라는 인간의 영역은 마치 도면의 입면도처럼 좌우로 흘러가게 하는 것. 형태에 주안점을 두었던 테두리 선 긋기 방식을 판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사물과 사물에 투입하여 담채가 지닌 담백함을 얻어내는 일. 평면화에 가까운 회화적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공간감은 하늘과 땅의 명도조절로 형성시키고 화면 구성은 물상들의 면적 대비에 의하여 박자요 화음을 그려내는 시도다. 돌담 한 줄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여 산다는 것.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다양한 문화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모습이 보여주는 증거와 같은 본질이 있다면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유서 깊은 마을이라 저 이웃들의 조상님들 또한 저렇게 이웃하여 살았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삶이 대를 이어서 전해지는 감동의 세월들. 눈부시다는 것은 명암이 도드라지지 아니하고서도 시각적 대비효과에 의하여 발생시킬 수 있다는 동양적 논리를 수채화 속에서 느끼려 하였다. 세련되지 않고 투박한 듯하지만 정감을 느끼게 하는 다소 거친 선들 속에서 저 이웃들의 순박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인성리에서 바라보는 단산
<수채화 79㎝×35㎝>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 단산만큼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오름은 필자가 아는 한 없다. 단산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바라보면 하늘과 이어지는 선들이 각기 다르다. 어떤 오름인들 그러하겠지만 대부분 그 오름이 가지는 느낌은 보유하고서 변화를 준다. 하지만 단산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이로움이 있다. 방위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거리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제공하는 신비함이 있다. 절벽과 산등성이의 조화로움이 가장 품격 있게 느껴지는 위치가 인성리 주거지역이다. 그림과 같은 산의 실경을 병풍처럼 치고서 살아가겠다는 조상들의 욕구가 역력하다. 오후 4시 정도의 태양광선이 서쪽에서 비출 때 명암오케스트라는 장엄한 심포니를 연주한다. 오페라 무대에서 자연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무대의 배우들과 그 앞에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나무들. 단산과 근경의 나무 사이에 살짝 보이는 농경지의 모습이 오히려 밝게 다가온다. 산의 존재감을 뚜렷한 명암 속에서 얻어내고 어두운 부분에서 산의 깊은 에너지를 표현하려 하였다. 상록수에서부터 활엽수까지 각종 나무 수종들이 햇살을 받아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회화적 완결성을 신명나게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은 너무도 소중한 시각자원이다. 수채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고마운 위치다. 태양광선과 자연이 만나서 어떠한 아름다움을 생성 시킬 수 있는 것인지 회화적 감성을 가지고 도전하게 만들어준 참으로 고마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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