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⑥ 재능기부 강사 강상청 씨
도내 경로당서 컴퓨터·스마트폰 등 교육
그간의 경험·배움 통해 손수 교재 제작도
자서전 만들기 목표… "배움으로 세대 소통"
입력 : 2023. 01.25(수) 16:00 수정 : 2023. 10. 31(화) 14:00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한라일보] 지난달 15일 제주시 일도2동 동광경로당. 나이 70을 한참 넘긴 노인들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정보화 교육이다. 이제는 컴퓨터를 켜고 끄고 간단한 인터넷 검색 정도는 할 줄 안다는 김희철(79) 동광경로당 회장은 "하루가 달리 바뀌는 세상을 알아갈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컴퓨터 선생님'이 강상청(76) 씨다. 강 씨가 목에 건 파란 줄의 신분증에는 '경로당 강사'라고 적혀 있었다. 대한노인회제주도연합회 경로당광역지원센터의 재능기부 강사 양성 교육을 통해 2019년부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주시 남성경로당까지 두 곳을 담당했다.
수십 년간의 경험·배움이 '나눔'으로
재능기부 강사로 나선 바탕에는 수십 년간의 경험과 배움이 있다. 1971년 북제주군교육청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교육행정직으로 근무하며 교구관리 컴퓨터프로그램 개발 보급 등 전산 업무를 했던 그는 퇴임 이후에도 배움을 놓지 않았다. 강 씨는 "컴퓨터라면 제주시, 제주도 노인대학원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해 왔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교육 교재'에도 교육계에 몸담았던 경험이 담겼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쉬운 노인들을 가르치기 위해선 교재가 필요했지만 딱히 주어진 교재가 없었다. 그가 목차부터 내용까지 손수 정해 '컴퓨터 검색마당'이란 제목의 교재를 엮어 낸 것도 그 때문이다. 모두 18장으로 구성된 교재에는 컴퓨터 기초·사용법부터 이미지와 문서마당 활용, 인터넷 검색, 컴퓨터·스마트폰 호환 등이 꼼꼼히 담겼다.
"나이 드신 분들은 한 번 들은 것으로 되질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다음 날이 되면 다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지루할 수 있지만 반복해서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교재를 만들어 (온라인) 카페에 올려놓고 그걸 꺼내서 수시로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강상청 씨가 경로당 강사 신분증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김지은기자
강의 목표는 '자서전 만들기'… "역사적 기록 될 수도"
그의 '학생'들처럼 노년기를 보내는 강 씨가 세운 강의 목표는 남다르다. 단순히 컴퓨터 활용 기술을 배워주기보다 이를 어떻게 쓸지에 고민을 더 뒀다. 그렇게 삼은 게 '자서전 만들기'. 자신의 사진, 글을 모아 한 사람의 삶의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다.
"나이가 들면 남는 시간이 많습니다. 활동이 적어지니 그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강의 전부터 생각한 목표가 '자서전 만들기'입니다.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찍어뒀던, 그냥 버려질 수도 있는 빛바랜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 '사진 자서전'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지요. 여기에 글을 쓰면 역사적인 기록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백지 상태"로 컴퓨터를 대하는 노인들에겐 쉬울 리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배움의 기회가 꾸준히 주어지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목표를 이루려면 시간은 걸릴 겁니다. 평대리 경로당에서 일주일에 한 번 3년간 강의를 했는데, 그 정도 하니 한글로 글자를 입력해 볼 정도가 됐으니 말입니다. 다들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시작하기 때문에 글자 하나를 쓰는 데도 손가락 하나하나로 천천히 해야 합니다. 저 역시 80년대 초에 컴퓨터를 그렇게 배운 것처럼 어느 정도 취미를 들이기만 하면 노인들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달 15일 제주시 일도2동 동광경로당에서 강상청 씨가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김지은기자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지는 '재능기부'
강의에 보람을 느끼는 것도 그런 순간이다. "컴퓨터에 눈을 뜨는 것을" 마주할 때다. 배움이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지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처음에는 뭐 하나 잘못 건드리면 컴퓨터가 고장날까봐 쓰지 못하던 분들도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보는 정도의 취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멀긴 했지만 조금씩 따라오고 있는 거지요. 혼자 수십 명이나 되는 경로당 인원을 혼자 가르칠 상황이 안 돼 대표 몇몇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는데도 이 분들이 다른 분들에게 배움을 전파하는 것도 인상 깊습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대부분 컴퓨터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이를 배우면 손자와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며 "(배움이) 세대 간의 소통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