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의 기원이 되는 '백록동서원'
[한라일보] 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학문연구와 선현에 제향하기 위해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을 말한다. 원래 서원이란 중국 당나라 말기부터 찾을 수 있지만 제대로 규정하고 제도화된 것은 송나라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주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열고 도학 연마의 도장으로 보급한 이래 남송·원·명을 거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니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서원도 기실 따지고 보면 백록동서원에서 출발한다. 서원의 기원이 되는 서원이라니 이 얼마나 뜻깊은 곳인가.
짐작하다시피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서원의 이름이 왜 하필 백록동서원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백록동이라면 어느 마을 이름인가 하겠지만, 동(洞)이라는 글자는 원래 골짜기를 나타낸다.
중국 려산에 있는 백록동서원.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백록동서원이란 백록이라는 골짜기에 세워진 서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한라산 꼭대기에도 백록담이 있는데, 백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또 있었단 말인가?
장시(江西)성, 주장(九江)시 루산(廬山, 려산)이라는 산이 있고, 이 산 오로봉 동남쪽 기슭에 있다는 것이다. 이 루산(Lushan)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최고봉인 한양봉은 해발 1474m이다. 유네스코는 북쪽으로는 양쯔강, 남쪽으로는 포양호와 경계를 이루는 루산이 강, 언덕, 호수가 어우러진 절경을 선사하며, 그 아름다움은 2000년 이상 동안 영적 지도자, 학자, 예술가, 작가들을 매료시켰다고 평가했다. 양쯔강 남쪽에 있는 곳이니 한라산에서 본다면 한참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다.
백록담 전설과 닮은 백록동 지명 '백록'과 아무 관련 없어
원래 백록동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사람 이발(李渤), 이섭(李涉) 형제가 은거한 동네라는 해설이 있다. 그런데 그 기원은 그들이 흰 사슴을 길렀으므로 이름 지은 것이라는 것이다.
점차로 이 이야기는 구체화해져서 관리로 여러 직책을 거쳤던 이발(773~831)이 은거하던 곳이며, 그가 사슴 100마리를 길러 길들였더니 항상 따라다녀 백록선생이라 불렸고, 그런 연유로 백록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후 주자(1130~1200)가 이전 940년에 세웠다가 맥이 끊긴 백록동서원을 1178년에 이곳의 지사에 임명되면서 다시 세웠다.
그런데 이 백록동서원에 아주 이상한 이야기가 내려온다. 1530년대 남강지부(南康知府) 왕진이 백록동이라는 동굴을 만들고 1535년 다음 지부 하암이 돌사슴을 만들어 안치했다. 마치 석굴암 같은 굴속의 방을 조성하여 돌사슴을 모셔놓은 모양새다. 이후 이 돌사슴은 동굴 속에 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돌사슴이 세워진 지 79년이 흐른 후의 일이다.
알고 보니 강서참의(江西參議)로 부임한 갈인량이 이 굴을 폐쇄하고 돌사슴도 묻어버린 것이다. 그가 근 80년 가까이 잘 있던 돌사슴을 왜 묻어버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행방불명된 돌사슴은 종적이 묘연한 채 잊혀 갔다. 그런데 이후 368년이나 흐른 1982년 땅속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한라산 백록담이 흰 사슴들이 물을 먹던 곳이라거나 신선들이 백록주를 마시며 놀던 곳이라는 전설로 붙은 황당한 이름이라는 것은 너무 깊게 세뇌되어 그런 게 아니라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요지부동이란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 어느 대학 교정을 비롯해서 백록 상(像)은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돌사슴을 묻어버리는 건 정말 엄청난 배짱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든 결단이다. 돌사슴을 묻은 깊은 뜻은 묻은 자가 무덤까지고 가지고 갔으니 아무도 모른다.
려산의 '루린(Lulin; 芦林湖)호, 노르호의 중국식 발음이다(사진 위키피디아).
려산은 원래 로산, '창자루 로'를 '농막집 려'로 비틀어…'로산'은 '노르올'에서 기원
백록동서원의 이름 유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백록동서원이라 하면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이 수백 년간 거쳐 간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재건한 서원이 아니던가. 이런 서원의 이름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하자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흰 사슴을 키웠다거나 흰 사슴 100마리가 졸졸 따랐다는 전설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한라산 백록담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호수를 노루(nuur 혹은 noor)라 부른 세력과 관련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슴 록(鹿) 자를 쓰게 되고, 그중에서도 흰 사슴이라 했으므로 호수를 바쿠(faku)라 한 세력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이유는 이 산 이름에 있다. 중국명 루산(廬山)의 '루(廬)' 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농막집 려(여)'라 한다. 이 글자의 뜻은 농막집(農幕-: 논밭 가운데 간단히 지은 집), 주막, 여인숙, 숙직실, 오두막집의 뜻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고사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할 때 쓰는 글자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려산과 백록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바로 이 글자는 이 외에도 '창 자루 로(노)'라고도 하는 것이다. 특별히 창끝에 달린 손잡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명에서는 대체로 좋은 뜻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원래 '로산'이라는 산 이름은 그래서 '려산'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럼 '로산'은 창 자루산이라는 뜻일까? 그게 아니라 그 산을 부를 때 고대인들은 로산이라 부른 것이다. 아마도 '노르~올' 혹은 '노루~산'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걸 후대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 글자를 동원했을 뿐이다. 이 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