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상생 실현하고 국가 폭력 재발 방지 서술 강화
제주4·3 미래 가치 주목 전승 위한 공감대 확산 중요
[한라일보]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는 삼일절 기념행사 이후 통일 정부 수립 요구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를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사건 수습 과정에서 미군정은 제주도 주민들을 탄압하였다."(동아출판)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진압군은 좌익 세력과 사건 참여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제주에서만 전체 도민(약 28만 명)의 10%에 달하는 2만5000~3000여 명의 주민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지학사)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8·15 광복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다룬 내용 중 일부다. 적게는 1쪽, 많게는 3쪽 분량으로 4·3사건이 서술된 교과서는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70여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참상을 일깨우고 있다. 과거 250자 정도의 짧은 서술로 4·3을 '폄하'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속 4·3이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확대, 지속을 위한 노력은 여전한 과제다.
|고교생 80% "교육과정 통해 4·3 알아"
제주지역 고등학교 1학년 학생 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가 담긴 '제주 4·3기억의 세대계승 및 교육에 관한 연구'(제주대안연구공동체·제주도교육청, 2020)를 보면 응답자의 84.6%가 4·3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그 계기를 학교의 교육과정이라고 꼽은 비율이 80.3%였다. 4·3에 대한 인지 경로에서도 학교 선생님의 지도와 안내가 81.7%를 차지했다.
학교에서 4·3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교과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이 '8·15 광복과 통일 정부 수립 과정'을 이해하는 데 알아야 할 학습요소로 반영되면서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전체, 중학교 역사 교과서 7종 중 5종에 4·3이 수록됐다. 올해 2학기부터 사용되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11종 중 4종에도 4·3이 처음 실린다.
이런 중에 지난해 11월 또다시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다. 새 정부 들어 마련한 2022 개정 교육과정안에 4·3 기술 근거가 사라지면서다. 제주사회의 반발 속에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도서 개발을 위한 편찬상의 유의점과 검정기준에 학습요소를 추가하는 형태로 4·3을 포함시켰으나 2025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이 얼마나 충실히 반영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지난 27일 제주중학교에서 진행된 4·3평화·인권교육. 한라일보 DB
|혐오의 시대 4·3으로 말하는 평화
교육계 등에선 정권에 따라 4·3서술 등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4·3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이며 평화, 인권, 정의 등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평화·인권교육의 토대"라는 공감대 아래 이를 전승하려는 의지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연대를 통해 국가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재발을 방지하고 화해와 상생의 과거 청산 모범으로 4·3이 기술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 보인다.
제주역사교사모임의 박진수 회장은 "국가, 이념, 민족 등의 차이로 인한 편견과 혐오 표현을 극복하고 평화를 말할 수 있는 키워드는 제주4·3이다. 고등학교 8종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4·3이 기술되면서 반드시 한 번은 4·3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지난 1월 전국 역사교사 모임을 가졌는데 4·3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도교육청에서 4·3교육을 1년에 2시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더 많이 늘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홍일심 도교육청 장학사는 "초·중·고 교사 43명으로 4·3평화·인권교육 지원단이 구성돼 교육자료 개발, 교과서 내용 분석 등을 이어오고 있다"며 "2022 개정 교육과정 한국사 교과서 편찬준거에 제주4·3이 명시됨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출판사 측에 4·3을 집필할 수 있도록 공문을 보낼 예정이고 4~5월에는 직접 출판사를 찾아 4·3진상조사보고서와 특별법에 준하는 객관적 기술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