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관광지로서 제주는 준비가 됐을까. 휠체어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는 전윤선 씨가 마주하는 불편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림=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워낙 제주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지체장애인인 전윤선(55, 경기도) 씨는 올해에만 세 번 제주를 다녀갔다. 여행작가이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이기도 한 그의 첫 제주 여행은 2007년. 그때보다 제주는 여러 면에서 "갈 만한" 여행지가 됐지만 휠체어를 타는 그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다.
윤선 씨가 제주에서 맞닥뜨렸던 불편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제주 여행을 다녀갔거나 계획하는 관광약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장애 관광지로서 제주는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 '윤선 씨의 휠체어 제주 여행' 이야기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표 관광지 우도… "화장실 걱정에 못 먹어"
"그냥 꾹 참아야 해요. 화장실 가는 게 걱정돼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요."
지난 5~6월 우도를 찾았던 윤선 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하우목동항 대합실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때였다. 이전에 방문했을 땐 사용에 별 문제가 없던 곳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리모델링을 했다는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가자 문이 닫히지 않았다. 결국 변기에 앉지도 못한 채 도로 나와야 했다.
해마다 200만 명이 찾는다는 제주 대표 관광지인 우도는 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이 많은 곳이다.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 이용부터가 막혀 있다.
"(우도에) 일반 화장실은 되게 많아요. 상점, 카페 같은 곳도 화장실이 다 있으니까요. 그런데 맘 편히 쓸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천진항에 와서야 있어요. 우도 비양도 장애인 화장실은 올해 두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문이 잠겨 있었고, 하고수동 해수욕장 화장실은 장애인 칸이 있지만 이용객이 많은데다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사용하다 보니 한 번 쓰려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고요."
지난 5~6월 우도 여행에서 하우목동항 대합실 장애인 화장실을 찾았던 윤선 씨.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니 문이 안 닫히고 변기에 앉을 수도 없어 도로 나와야 했다. 전윤선씨 제공
|실태조사 허술에 설치율도 저조
이 같은 불편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관련 실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도면에 따르면 우도지역 공중화장실 16곳 중에 실제 운영되는 화장실은 15곳인데, 이 중에 10곳(전체의 66%)이 장애인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수치만 보면 절반 이상의 설치율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는 문서상에 '숫자'라는 점이다. 행정에선 우도에 실제 장애인 화장실이 몇 곳이나 있는지, 이곳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시 우도면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새로 조성한 3곳을 포함해 모두 4곳에 장애인 화장실이 운영되는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나머지에 대해선 (실제 운영 여부 등을)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만 놓고 봐도 장애인 화장실 설치는 갈 길이 멀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두 행정시가 설치·지정한 공중화장실은 모두 681곳(제주시 282곳·서귀포시 399곳)인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변기가 설치돼 있거나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갖춘 곳은 전체의 절반 정도인 363곳(제주시 161곳, 서귀포시 202곳)에 그친다.
현행 공중화장실법(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는 '공중화장실 등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사용할 수 있는 변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1998년 4월 이전에 지어진 경우에는 관련 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데다 지자체가 설치하는 공공용시설이라도 연면적 660㎡(지하주차장 제외) 미만의 건축물은 예외가 적용된다. 행정이 관리하는 공중화장실에도 장애인 화장실 설치율이 저조한 것에는 이러한 요인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도 실제로는 이용할 수 없는 '무늬만 화장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가 지난 2020년 도내 관광지 140곳을 조사한 결과 66%(93곳)가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휠체어를 타는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관계자는 "남녀 구분 또는 공용으로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한 곳 중에서도 10%가 바닥면적이 (편의시설 설치 세부 기준에) 미흡했다"면서 "안전손잡이가 잘못 설치된 곳도 28%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는 전윤선 씨. 2007년 첫 여행을 시작으로 꾸준히 제주를 찾고 있다. 전윤선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