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 모흥혈에서 큰부리까마귀와 까치가 동맹하다

[목요담론] 모흥혈에서 큰부리까마귀와 까치가 동맹하다
  • 입력 : 2023. 08.10(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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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023년 여름, 이른 아침 삼성혈을 찾았다. 경내에는 곰솔을 비롯해 붉가시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녹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많다. 특히 삼성혈비 앞에 서 있는 녹나무 두 그루가 늠름하다. 감히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로 경외롭고 신성함이 팍 밀려온다. 도심 속의 숲은 일상에서 쌓인 찌든 때를 깔끔하게 씻어주는 호수와 같은 곳이다. 삼성혈도 바이칼호수만큼이나 손색이 없다.

삼성혈은 탐라국 개국 신화의 발상지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탐라는 주변 국가들과 교류를 하다가, 고려 정부에 통합된다. 한때 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당당히 했으며, 섬 안에 머물지 않고 활발한 대외 교류를 펼쳤다. 때로는 외세에 의해 고된 생활을 이어가야 했지만, 그때마다 위안이 되어준 구세주가 까마귀였다.

삼신인에서부터 탐라 사람들의 삶을 꼼꼼히 지켜본 큰부리까마귀가 삼성혈 경내에 있는 구실잣밤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오던 보금자리를 내주고 멀리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한라산신에게 꾸지람을 들은 듯싶다. 제주의 상징인 녹나무에 까치들이 둥지를 틀었다고 해서 기분이 상했을까. 사실 까마귀와 까치는 사촌지간이지만, 견원지간처럼 서로 경쟁해야 한다. 특히 번식기에는 두 종 간의 숲세권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생태적 지위로 보면 큰부리까마귀가 까치보단 높다. 둥지의 구조를 보면, 까치는 둥근 지구본 형태이며 까마귀 둥지는 양푼 그릇형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까치는 무리를 이루어 큰부리까마귀를 상대해야 한다.

다행히 삼성혈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무사히 둥지를 떠났다. 어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산지천 왕벚나무숲에서 안도감과 존재감을 과시했다. 까치들도 인정한다. 개체수로 보면, 까치가 훨씬 많다. 둘 다 신산공원을 중심으로 먹이활동을 하지만 서로의 영역과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불필요하게 대들거나 대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애초부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기에 같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 애써 무시하려 한다. 육지에서 왔다고 해서 까치를 미워하고, 검다고 까마귀마저 죽이려 한다.

한라산으로 떠났던 큰부리까마귀가 삼신이 동맹한 모흥혈로 되돌아온 까닭이 뭘까. 사실 삼성혈은 삼신인이 나오기 전, 까마귀 조상들의 요람이었다. 까마귀 몸속에는 자연을 경배하는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겉이 검다고 모두가 검지 않다. 삼신인도 까마귀도 까치도 모두 어두운 곳을 뚫고 세상으로 나왔다. 암흑 속에 있었기에 밝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어둠과 광명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늘 상생하고 공생하는 보편적 철학이다. 까치에 이어 큰부리까마귀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될 듯싶다. 큰부리까마귀와 까치가 삼성혈에서 동맹에 나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큰부리까마귀의 검고 붉은 혈기가 돌고 돌아 인간 세상을 파탄 내지 않길 빌어본다.<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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