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5)애월읍 하귀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5)애월읍 하귀2리
전통문화가 숨 쉬는 마을공동체 정신의 표상
  • 입력 : 2023. 08.25(금) 00:00  수정 : 2023. 08. 27(일) 15:25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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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이 섬의 역사에 있어서 수렵에서 농경으로 옮겨가던 시기에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촌락을 이루고 살 곳을 찾았다면 이 곳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탐라전기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22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소왕천과 고성천 사이에 있어서 땅은 비옥하고, 지형이 독특해 물 빠짐도 좋다. 바닷가는 육지 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배를 대기에 용이하니 천혜의 포구를 보유할 수 있다. 김통정이 이끌고 들어온 삼별초가 그래도 번창한 지역을 기반으로 똬리를 틀고자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당시 귀일현이 있었던 곳. 인근에 항파두리성을 쌓을 인력과 지원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하귀2리는 조상대대로 이어온 마을공동체 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

동쪽으로 하귀1리와 남쪽으로 상귀리, 서남쪽으로 수산리, 서쪽으로 구엄리와 접해있다. 미수동을 비롯해 가문동, 학원동, 답동, 번데동 이렇게 자연마을 5개 동이 합쳐져서 이뤄진 대촌이다. 정주여건이 도시지역 못지않게 발전되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도농복합형 반농반어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 생산물은 예로부터 비옥한 토질을 가지고 밭작물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농업생산성이 뛰어나다보니 밭농사와 관련된 문화가 여타지역에 비해 발전하였다. 그런 토대 위에서 무형문화자산도 동반 상승효과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을은 하귀2리 뿐 일 것이다. 처음이 '귀리 겉보리 농사일소리'다. 이는 그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됐다. 두 번째는 섬 제주의 독특한 해변문화를 주제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는데 '가문동 아끈코지 원담 역시'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전역에 리 단위 마을이 수 천 개는 넘을 것이다. 그 중에서 이런 성과를 보유한 마을이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결속력.

문동원 이장에게 하귀2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결속력을 이렇게 풀어서 설명했다. "불문율에 가까운 문화가 있습니다. 마을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업에 어느 정도 손실이 와도 내색을 하지 않고 마을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려면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함께 동고동락 해야 한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과 헌신이 있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다른 마을에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어떤 전통적 기질이 이러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민속경연이라고 하는 경쟁을 통해 역으로 확인하게 된 하귀2리의 문화정체성을 더욱 연구해 제주의 미래에 큰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는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리 단위에서 '전통문화축제'를 연 것이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공연과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로 구성된 마을축제. 가문동 아끈코지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축제는 제주농경문화와 원담이라고 하는 독특한 어로문화를 체험하고 알리는 소중한 문화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축제라고 하는 행사도 중요하지만 상설공연장과 같은 시설에서 관광객들이 제주농경문화의 진면목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과제다. 교육적으로도 조상들의 얼을 체험을 통해 배우고 제주인의 자긍심을 육화시키는 장이 되도록 하는 문화자산인 것이다. 인물 중심의 위대함에 탐닉하기에 앞서서 우리네 조상님들이 고된 밭일 과정에서도 노동요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모아나가던 슬기를 전승해야 할 책임은 행정당국에게 있다. 뚜렷한 정신문화적 성과를 보유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에게 끊임없는 지원과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반시설 마련 등 정신문화자산에 대한 투자가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제주도정 차원에서 심층적인 연구와 실행계획이 있어야 할 정책이다.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 진취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는다. <시각예술가>



가문동 굴다리의 여름날
<수채화 79cm×35cm>

인구와 면적 모두가 대촌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이다보니 그릴 소재가 넘쳐난다. 그 중에서 다른 마을과 차별화된 그 무엇을 찾는다면 이런 독특한 교통시설이다. 도시에서나 있을 것 같은 이런 도로상황이 발생한 것은 일주도로를 확장 할 수 없는 여건이다보니 하귀2리 중심가를 우회하는 도로를 만들면서 기존에 북쪽 바닷가 가문동으로 내려가던 길을 온전하게 살리면서 동서로 큰 길을 뺀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 필자는 참으로 경이롭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각적 감수성을 되살려 그렸다. 물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굴다리 밑 어두운 면의 미세한 광선의 양. 명암법의 입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변화가 숨어있다. 밖은 8월의 오후, 뙤약볕이 눈부신 상황에서 저 그늘은 외부 공간에서 들어오는 강력한 반사광들을 맞아들이고 제어하느라 바쁘다. 섬 제주에서는 보기 드믄 이러한 광선상황을 그리는 짜릿함의 이면에는 단순하게 교통관련 시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대하여 특히 반사광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 지 발견하게 된다. 태양광선의 이러한 구조와 만나면 어떤 변화무쌍한 면모를 보이게 되는 지 그림으로 관찰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저 벽에 수명이 긴 소재로 예술성을 부여하여 주민이나 관광객들에게 문화적 향유의 폭을 넓혀줬으면 하는 것이다. 주변에 무작정 자란 것 같은 나무와 풀들도 정갈한 조경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벽과 나무들이 함께 어울리는 기획도 좋고,



미수동 포구에서 만난 풍경
<수채화 79㎝×35㎝>

우리가 화산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바닷가에 서서 저렇게 검게 식은 용암을 바라보면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러움이란 이런 것. 태고의 땅 속에서 솟아난 용암이 흘러와 바다와 만난 모습. 엄청난 풍화를 겪었을 것이다. 또한 겪고 있는 과정일 것이며…. 천년을 한 묶음으로 하는 지질학적 시간을 설정하고 그 사이에 이 바닷가에서 저 모습을 바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며 그렸다. 여름날, 광선의 양이 바다와 멀리 원경을 밝게 만드는데 그에 대비효과를 표현하며 검게 버티고 서있는 산들. 산수화에 등장하는 산들의 모습이며 절벽의 모습을 동양화붓을 가지고 그렸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몽돌해변이다. 하귀2리에서 부르는 명칭은 둘이다. 미수동에서는 '섯작지', 가문동에서는 '비운작지' 필자가 제주의 수많은 마을을 다니면서 리 단위 마을 안에서도 지명이 둘로 불리는 곳은 처음 경험하였다. 해안도로가 지나지 않음을 혜택으로 자연 그대로의 정한이 남아있는 힐링산책로다. 파도소리와 함께 몽돌이 구르는 효과음은 귀를 통한 치유의 음률이라고 해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무엇을 간직한 해변이다. 이 고귀함이 그대로 간직되어 후세에도 영원히 전해지기를 갈망하며 그렸다. 기기묘묘한 절경을 감상하던 시대는 지났으니 이처럼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시각적 여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토록 소중한 자산을 간직한 마을이 하염없이 부럽기도 하여 간절한 심정을 담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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