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인터뷰] 3월 제주 굿판 누빈 '이방인', 그들의 기록

[한라인터뷰] 3월 제주 굿판 누빈 '이방인', 그들의 기록
[제주 굿, 3인의 시선] (1)베트남인 투홍·독일인 카트린 씨
'영등할망 신앙' 연구하려 난생처음 제주 찾아
'토착 기억 문화' 조사 위해 제주굿 주목하기도
  • 입력 : 2024. 03.27(수) 10:59  수정 : 2024. 04. 09(화) 09:26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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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투홍, 카트린 씨. 한국학을 전공한 베트남인 투홍 씨와 어머니가 한국인인 독일 국적의 카트린 씨 모두 인터뷰 내내 능숙한 한국어로 제주굿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한라일보] 바람 많고 척박했던 제주, 이 땅에서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굿'은 삶에 대한 기원이었다. 생활 터전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그 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때가 되면 섬 곳곳에서 일어나 신명나게 춤을 춘다.

오래도록 숨을 이어 온 '제주굿'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23일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열린 '영등송별제'에서 만난 3인도 그랬다. 국적도 하는 일도 저마다 달랐지만 제주굿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시도를 하는 듯했다. 3월 내내 제주 굿판을 누빈, 이들의 시선이 제주만의 문화의 가치에 가닿는다.

|투홍 "제주굿 진한 공동체 인상적"

"한국의 전통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찾아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보티투홍(33) 씨가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을 맞으며 풍요와 안녕을 빈다는 칠머리당영등굿. 그 시작인 '영등환영제'(3월10일)를 보기 위해 그 이틀 전에 제주에 왔다는 투홍 씨의 마지막 여정도 영등굿(영등송별제)이었다. 그가 난생처음 제주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 현지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투홍 씨가 제주굿에 관심을 갖은 것은 여러 질문 때문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칠머리당영등굿이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그를 제주로 이끌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영등굿을 찾아 기록하는 투홍(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씨. 베트남 현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투홍 씨의 논문 주제는 '제주도 영등할망 신앙'이다.

20일가량 제주에 머문 투홍 씨는 도내 곳곳에서 열리는 영등굿을 찾아다니며 직접 '경험'에 나섰다. 굿판 대여섯 곳을 누비며 그가 느낀 것은 낯섦보다 굿을 이어 온 진한 '공동체'였다.

"제주 해녀와 일부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굿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굿을 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기원하는 것까지 모두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이런 모습에 굉장한 정을 느꼈습니다."

투홍 씨는 자신이 직접 보고 조사한 것을 분석해 조만간 논문에 실을 예정이다. 논문 주제는 '제주도 영등할망 신앙'으로 정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영등할망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만약 보존이 필요하다면 경제 발전이 주가 되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면서 "영등할망 전설에 대한 남은 궁금함에 대해서도 더 분석하고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카트린 "제주굿에 담긴 기억 문화 관심"

독일인인 바움게르트너 카트린(45) 씨는 제주의 '기억 문화'를 조사하는 작업의 하나로 제주굿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일 제주에 도착해 '영등송별제'가 열리기 전까지 제주시 함덕, 조천, 북촌 등에서 치러진 영등굿을 바삐 쫓아다녔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카트린 씨에게 제주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2000년대 중반 처음 찾았을 때 알게 된 제주4·3의 역사,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도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4·3 거리예술제에 참여하는 외국인 예술가의 통역을 위해 처음 제주를 찾았습니다. 그때 4·3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죠. 오랜 시간 말 한마디 못하고 힘겹게 살았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주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잠든 화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제주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열린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본향당굿. 독일 국적의 카트린 씨가 멀리에서 그 현장을 한눈에 담으며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카트린 씨가 제주에 온 것은 이번이 5번째다. 올해의 주된 목적은 논문 준비를 위한 현장 조사다. 논문의 주제는 '풍경과 기억 - 한국 제주도 당대미술의 토착 지식에 대한 관점'. 그는 제주굿을 통해 무속에 담긴 '토착 기억 문화'에 다가가고 있다.

"(이번 방문으로) 제주굿에 대해 정확히 조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다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은 아주 큰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역 샤머니즘의 기억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 관심은 제주에서 굿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예요. 특히 '최근'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등굿을 하는 해녀들이 나이가 들어 사라지면, 해녀 굿 문화는 어떻게 될까', '마을 사람들에게 심방이, 마을에 사람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들입니다."

카트린 씨의 최종 목표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의 눈에 제주가 더 흥미로운 것도 이곳만의 이야기가 풍부해서다. 카트린 씨는 "(이번에 제주에 와서도)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짧은 이야기들을 많이 만났다"면서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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