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가라앉은 자의 목소리와 왼손의 기억

[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가라앉은 자의 목소리와 왼손의 기억
  • 입력 : 2024. 05.08(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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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역사를 증언해야 하는 자들은 구조되어 살아남은 자들이 아니라 죽어서 '가라앉은 자'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폭력의 증언자가 되었던 현실 앞에서 프리모 레비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들은 '죽은 자들'의 말들이어야 한다고 했다.

'억울한 죽음'의 신원을 내세웠던 초창기 제주 4·3 진상규명은 제주 4·3 특별법 제·개정과 희생자 보상의 수순으로 진화했다. 뚜렷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주 4·3의 현재적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제주 4·3의 진정한 해결이 상식처럼 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죽음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존재들이 있다.

역사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과정의 연속이다. 해결 프레임은 해결의 주체와 대상을 둘러싼 위계가 발생할 수 없다. 해결 선포의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해결'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항쟁이냐 학살이냐'라는 정명의 문제 또한 그러하다. 김영범 제주 4·3연구소 이사장은 정명(正命)이 아니라 정명(定命)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정명은 법 제도에 의해 명명되는 수동적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정해가는 주체적 과정이다.

제주 4·3을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적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제주 4·3 운동에서 여전히 말해지지 않는 목소리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목소리들'(감독 지혜원)을 비롯해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언어'에 주목하는 이유는 상징적이다. 생존 희생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현재적 증언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4·3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증언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국가의 기억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민중적 선언이었다. '시민적 성원권'을 얻은 목소리들의 힘은 컸다. 제주 4·3 진상규명 운동 역시 '목소리들'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살아남을 수 없던 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비유하자면 지금까지의 증언과 기억 투쟁은 오른손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성원권을 얻지 못한 '왼손의 기억'은 여전히 존재한다. 제주 4·3의 뒤틀린 가족관계는 우리 사회에 '왼손의 기억'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침묵은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씌여진 멍에가 아니었다. 죽은 자들에는 해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죽어버려서,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죽은 자의 증언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스며드는 동시에 그들의 증언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결여를 채워줄 수 있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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