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 중 무엇이 중요할까? 어린 아이에게 부모 중 누가 더 좋냐고 묻는 것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문이다. 두 권리는 상생관계이며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7개 시도 중 제주도를 포함한 7개 시도가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였다. 이 중 서울시는 충남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난달 4월 26일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의결이 되었으며 다른 시도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들이 성적, 나이, 성별,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처벌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이 조례가 생겨난 이유는 그동안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체벌, 복장과 두발규제 등 학교의 관리적 편의와 권위주의적 측면이 민주시민을 기른다는 국가교육의 목적과 배치되고 교사와 학생 간의 마찰,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제정된 인권조례가 교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바로 서이초 사건 이후다. 정작 교육계와 달리 정부와 여당은 교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로 지목하였고 결국 폐지 움직임은 현실화 되었다. 학생인권이 정치적 입장과 이해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인권조례가 사라지면 학생들의 책임감이 높아지고 교권이 더 강화될까?
미국과 일본, 유럽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교권 침해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오고 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교권침해가 다양한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회 문제임을 시사한다.
또한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으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미래는 선진국들의 교육 현실 속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교사인력 충원에 대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기로에 놓여 있다고 보인다. 교대생의 자퇴 비율 증가, 교사 사직과 이직률 증가 등 교직 기피 분위기가 점차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찾아야 한다. 조례폐지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싸우는 동안 정작 문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굉장히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이다.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은 끄지 않고 상대 탓을 하고 말다툼하느라 불을 끌 타이밍을 놓치는 격이다. 교권이 무너진 것이 학생인권조례 탓이라고 원인을 돌린다면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강력했던 교권의 부작용으로 인해 생긴 시대적 결과물이라면 이제는 학생의 인권에 걸맞는 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교권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건강하게 양립하는 것은 교실을 넘어 결국 국가교육을 바로 세우는 기초이자 핵심이다. 정치권의 새로운 관점과 지혜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허수호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