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애의 한라칼럼] 부치지 않을 5월의 편지

[우정애의 한라칼럼] 부치지 않을 5월의 편지
  • 입력 : 2024. 05.28(화) 00:00  수정 : 2024. 05. 30(목) 13:17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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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랑하는 어머니, 부치지 않을 편지이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시작을 해 봅니다.

저의 어머니에 대한 뚜렷한 첫 기억은 대전시 대흥동에 살았던 시절로 돌아가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때였을 것 같아요. 일곱살 때 제주로 이사했으니까 아마 그 무렵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 하얀 윗옷을 풀을 먹여 빳빳하게 말린 후 입에 물을 가득 머금고는 가끔 뿜어내며 다리미질을 하셨어요. 반듯하게 다려서 아래 황토색 주름치마와 함께 어울리게 입혀서 밖에 나가도록 해주셨지요. 저는 설레이며 어머니가 다리미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고,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모임에 보내는 어린 딸이 가서 기죽지 말라며 열심히 다리미질에 집중하셨던 것같아요. 아니, 그 기억이 사실과 달라도 좋아요.

제가 간직한 어머니와의 첫 기억이 어머니와의 기억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기억이라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좋으니까요.

초등학교 시절의 어머니는 엄하셨고 잔소리 대신 제 눈을 바라보시며 무언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신 걸로 기억해요. 사소한 일에도 엄하셨던 어머니를 닮았는지 오빠들도 덩달아 엄해서 몹시 벗어나고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제 기억에는 한없이 부드럽고 인자한 어머니셨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늘 내 편인 어머니가 정말 좋았어요.

정확한 년도는 기억을 못하지만, 아마도 1981년쯤이겠지요, 수원 안짓동네로 집을 사서 이사 간 얼마 뒤 "이 집을 가져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그 집은 엄마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고 남 보기에는 대수롭게 보였겠지만 저는 그 집을 가꾸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머니는 집 마당에 가득한 돌멩이를 마치 잡초를 메듯 하나하나 고르고 그 옆에 앉은 저는 엄마처럼 능숙하게 해보려고 흉내내다 손가락을 다쳐 피가 나자 옆에 있던 쑥을 문질러 꼭 눌러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흰옷을 다려주시고 저는 바라보던 모습에 버금가게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당에 핀 목련 봉우리를 따서 찌고 말려서 차로 마실 수 있도록 손질하던 모습, 손수 붓으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를 쓰시던 모습 등 그 집은 엄마의 이야기로 가득한 집이었습니다. 아직도 전 마당을 가꾸시고 늘 내 편이셨던 어머니로만 머물러있는데 흐르는 세월 앞에서 96세 노인이 되어 힘없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서글픔이 목까지 차오르곤 한답니다.

아무튼 어머니, 참 감사합니다. 96살의 연세이지만 아직도 계셔 주신 것이 제일 고맙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온 날 중에는 엄마를 스치듯 지나쳐온 시간도 있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픔니다. 그러나 우리 집이 가장 품위 있고 자랑스러운 집이라 착각하며 남부럽지 않게 크기까지 엄마의 역할이 대단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진 자신감과 자존감은 엄마의 영향과 함께 수원집에서 키워진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잘 키우신 것 자체가 크게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처럼 하루하루 건강유지 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우정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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