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봄 제주의 한 보리밭에서 농부들이 다 익은 보리를 수확하고 있다.
[한라일보] 1993년 봄, 제주의 한 보리밭입니다. 드넓은 들판에 누렇게 익은 보리가 가득합니다. 콤바인 한 대가 보리를 베어내고, 농부들이 수확한 보리를 마대에 담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다 익은 보리를 수확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저 끝까지 보이는 보리밭. 보릿대를 베어내도 베어내도 끝이 없어 보입니다.
예부터 논이 부족한 제주에서는 밭에서 보리를 심어 키웠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의 '제주농촌진흥 60년사'를 보면 198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보리는 제주농가의 주 소득 작물이었습니다. 제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지금의 감귤만큼이나 중요한 작물이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보리를 메어 수확하는 모습.(1993)
직접 손으로 보리 수확하는 모습.(1993)
이 때문에 그 당시 보리수확기는 제주에서 가장 바쁜 농번기였습니다. 요즘처럼 기계가 아닌 주로 사람의 손으로 베고 묶으며 수확이 이뤄졌습니다. 일손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 만큼 보리주산지 학교에서는 임시방학, 일명 '보리방학'까지 실시해 집안일을 돕게 했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재배된 보리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겉보리, 쌀보리, 맥주보리가 대표적인데요. 과거 쌀보리는 2만4000여ha까지, 맥주보리는 1만1000여ha까지 재배됐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재배면적이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제주에서 재배되는 보리는 맥주보리가 대부분인데요. 지난해 맥주보리 재배면적(1608㏊)과 비교하면 사라진 제주의 보리밭의 크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색깔보리 등 기능성 보리 재배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고 하네요.
보리 수매를 기다리는 농민들. 수확한 보리가 담긴 마대가 수북히 쌓여 있다.(1989)
보리 수매 현장. 그동안 땀흘린 만큼 보상을 받은 농민들이 기뻐하고 있다.(1989)
l 보리 익을 때만 기다리다 보니…
제주의 보리밭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보리'에 대한 기억마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보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보릿고개'인데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을 가진 '보릿고개'는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아니해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도로변에서 농민이 타작한 보리가 햇볕에 잘 말리게 정리하고 있다.(1989)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농민들이 타작한 보리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1989)
3~5월 사이 '춘궁기(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익지 아니해 식량이 궁핍한 봄철의 때)'와 맞물리다보니, 이때 보리가 익을 때만 기다리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극심한 흉년으로 쌀이 수확되기 전 보리만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만 했던 '꽁보리밥', 보릿가루에 술을 부어 반죽해서 만든 '보리상외떡(보리빵)', 보리쌀을 볶아 갈아만든 제주 미숫가루인 '게역' 등 보리와 관련된 추억의 음식인데요.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시절의 아픔으로, 누군가에게는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리빵을 만들고 있는 모습.(1992)
지난 5월 중순,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보리밭에서 농민이 콤바인을 이용해 황금빛 보리를 수확하고 있다.(2024)
ㅣ지금, 제주 들녘은 황금빛
요즘 제주 들녘에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누렇게 익은 보리수확이 한창입니다. 겨울 푸르게 물들었던 보리밭이 봄이 되니 황금빛으로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기계화 도입으로 보리농사가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보리밭 사잇길로/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 있어/나를 멈춘다’라는 노랫말처럼 보리밭 사잇길로 걷고 싶은 때입니다. 혹여 지나가다 보리밭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멈추어 그때의 기억을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글 박소정 기자·사진 강희만 기자
◇제주사진, 그때=제주의 순간은 과거 그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35년 넘게 제주의 순간을 담아온 한라일보의 보도사진을 통해 현재, 그리고 과거 그때의 제주를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