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치매와 관련한 신경정신과 연구를 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느냐 또는 치매를 고칠 수 있냐는 것이다. 즉, 치매의 예방 또는 치료에 대해 묻는다. 때로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핵심을 더 잘 짚어내는 것 같다. 치매의 예방과 치료는 뇌를 연구하는 전 세계에 수많은 의과학자가 결국 도달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의학 연구의 목적은 과학적 진리라는 순수한 가치 추구를 넘어서 결국은 인간의 고통을 덜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라는 건 참 더디기만 하다. 몇 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고 검증을 거쳐 논문을 출판하는데, 한 해에 수백만 편의 논문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니, 한 편의 논문을 출판한 연구자가 인류의 총체적 지식의 발전에 기여한 정도는 그해 지식 발전의 수백만분의 일 정도 되겠다. 생각하기에 따라 보잘것없는 숫자로 느껴질 수도, 아니면 꽤 커다란 기여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느 박사가 치매 치료제를 발견했다"고 속보처럼 보도되는 일들은 과장이며 실제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과학이란 정말 많은 연구자가 각자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와중에 어떤 공통된 방향으로 흐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숱하게 검증되며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치매 같은 노년기 문제가 대두하면서 가장 흔한 치매의 원인인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투입되었고 수 많은 연구자들이 본인의 인생을 걸고 매달렸다. 그런데도 그간 치매 연구의 아이러니는, 치매의 진행을 늦추거나 수명을 늘릴수록 사회적 부담이 더 커지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치매를 앓는 채로 오래 살게 되면 그것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알츠하이머병 연구 역사상 최초로 질병 자체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처음으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긍정적인 결과를 내기 시작했고 미국 식품의약청의 사용 허가를 받아 환자들에게 투여를 준비 중이다. 다만, 이 치료제가 우리가 희망하는 것처럼 치매를 깨끗이 낫게 하는 그런 약은 아니고 인지 기능을 조금 개선하고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의 효과가 있는 거라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지난 수십 년의 연구 결과가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비슷한 임상 시험들이 수년째 진행되고 있기에 이것 역시 "특종"도 "속보"도 아니지만, 우리가 치매, 나아가 뇌과학 연구에 몹시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이제 누군가 치매를 고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라고 답할 수 있다. 몇 년 뒤에는 이 대답이 강한 긍정, "물론이죠! 치료할 수 있습니다."가 되기를 바란다. <이소영 하버드대의과대학·브리검여성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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