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과학성과 체계성을 갖춘 한글은 그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해 우리나라를 빛내주고 있다.
요즘 "한글서예는 한글의 우수성을 뒷받침하기에 역부족하다"는 작고 원로서예가의 말이 생각난다. 얘기인즉슨, "한글서예에 골기를 갖추고 형식에 다양성을 길러 광개토대왕비 글씨체와 같이 민족정신이 깃든 웅건함을 담아내야한다"는 것이었다.
한자는 오랜 역사와 글자를 만든 원리, 즉 상형·지사·회의·형성·전주·가차 6가지로 조형성이 풍부하나, 우리 한글은 역사도 짧고 자형도 간단하여 서예적 표현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 또 한자는 크게 전·예·해·행·초 5체로 다양한 데 비해, 한글 서체는 현대에 와서도 '고체'와 '궁체' 2체로 단순한 편이다. 한글서예가 발전이 미흡했던 이러한 이유는 역사가 짧고, 조선의 공식 문자가 한자였으며 갑오개혁이 단행된 1894년에야 제1공용문자로서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글서예가 역사에 가장 아쉬운 부분은 '궁체'외에 별반 서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현대 한글서예 체계를 정립한 일중 김충현(1921-2006) 선생은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의 옛 판본체에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하여 고안한 서체를 선보였다. 일명 '고체(古體)'가 그것이다. 일중은 그의 저서 '우리 글씨 쓰는 법'에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도 '상형'에 근본을 두어 그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으며, 글자는 고전을 본받은 것(字倣古篆)이라 하여 우리 글씨체를 형성한 것이니 '서법'의 새 길을 여는 길이 될 것이다. '궁체'에만 의존하던 우리 글씨체를 이러한 새 방향에서 찾으면 온고지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오늘날 한글 서예의 흐름은 어떤가? 현대성과 대중성으로 서예권 밖의 디자인체를 흡수해 새로움을 찾는가 싶었으나, 전통을 바탕 삼지 못한 성급함으로 인해 대부분 서예의 아류로 전락해 방향성을 잃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예는 서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본질적으로 가치를 훼손한다. 바꿔 말해 '변화는 전통의 연장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예의 본질이 필선(筆線)에 있으므로 구태여 한글서예과 한문서예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한문의 조화로운 서체 개발을 위해서도 한글과 한자를 구분하는 이원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서예가들의 중론이다.
한학자이며 역사학자로서 서예에 정통한 위당 정인보(1893-1950)선생의 '국문서법연구서'를 보면, 궁체의 정자체는 '해서', 흘림체는 '행초'에 해당하고, '훈민정음체'와 '용비어천가체'를 본받은 '고체'는 '전예'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예 학습의 기본이 그렇듯 한글서예도 '전서'와 '고예(古隸)'의 습득이 필요하고, 행초필법으로 서체의 변용능력을 키우며, 순수미에 갇힌 서예심미를 개성과 특성미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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