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입맛 자극하는 탐독 여행 "생각의 맛 탐험"

[이 책] 입맛 자극하는 탐독 여행 "생각의 맛 탐험"
정상원의 『글자들의 수프』
  • 입력 : 2024. 08.09(금) 02:40  수정 : 2024. 08. 11(일) 19:59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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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을지로의 한 영화관 앞을 지나다 우연히 만난 번데기 냄새에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과천 동물원을 구경하던 순간이 흑백 사진처럼 어렴풋이 떠오('들어가는 말' 중)"른다던 셰프 정상원 작가. 그의 말처럼 더없이 여리고 순간적인 감각인 향은 그럼에도 "끈질기고 충실하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곤 한다.

여기에 사소해도 의미있는 이야기가 더해지면 음식은 오롯이 기억으로 새겨진다. 어쩌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것은 음식에 얽힌 '이야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문학, 역사, 철학에서 나타난 음식 이야기를 탐독하며 독서 일기를 썼다. 수많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속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물론 그 무대를 모두 여행했다.

책 '글자들의 수프'(사계절 펴냄)는 그가 탐독 여행 중 만난 음식이야기를 셰프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하며 쓴 독서 일기다.

작가의 요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제철 식재료에 대한 해설은 독자들이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작가는 현기영의 제주, 조정래의 벌교, 한승원의 장흥, 정지아의 지리산 등등 셰프가 제철 재료를 찾아나서듯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역을 현장 답사한 뒤 그 지역의 음식 문화와 역사까지 해설한다.

출판사는 "인류의 문화 곳곳에서는 음식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문학, 역사,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며 "음식에 맛만을 탐미했을 때 우리의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고,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단맛, 쓴맛, 매운맛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한다면 우리의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요리사에게 주방은 언어를 배우는 학교이자 맛과 향이 저장된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셰프의 손에서 재료들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밑말과 속뜻을 지닌 낱말이 된다"며 "무의미했던 단어들이 문법에 맞게 배열되어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듯, 레시피는 식재료를 개연성 있게 줄 세워 원하는 맛으로 엮어낸다"고 했다. 예를들어 소금과 후추 같은 향신료는 단어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조사처럼 적절한 위치에 콕 들어가 맛의 의미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식이다.

작가가 만난 음식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다 보면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맛있는 상상과 행복한 생각, 그리고 뜻밖의 위로를 받게될 지도 모르겠다. 1만5500원. 오은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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