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바위섬에 새들이 앉자, 어느새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더니 진짜 섬이 됐다. 바람의 섬, 신들의 나라, 오름 왕국, 해상왕국 탐라 그리고 유배인을 극진히 모신 섬으로 유명해지자, 너도 나도 건너온다. 작은 새들도 소문을 들었는지 몰래 생이물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쪽 대륙과 북쪽 대륙을 오가며 눈여겨봤던 깝작도요도 제주섬에 깜짝 나타났다. 물맛이 달달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떠나길 반복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사계절 내내 눌러앉았다. 최근 들어 깝작도요가 꼬리를 까딱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예전과 달리 사뭇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먼 옛날, 지혜로운 섬나라가 대륙을 집어삼킬까 봐 큰 나라의 풍수지리가 고종달이 제주도를 방문한다. 섬을 돌면서 수맥을 막아가더니, 돌아가기 직전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지장샘까지 찾아온다. 다행히 고종달이 도착하기 전에 수신(水神)이 나타나, 농부에게 지장샘의 위치를 길마로 감추라고 일러줬기에 고종달이 지장샘의 수혈을 뜨지 못했다. 아무리 수맥을 잘 찾는 풍수가일지라도, 산물의 위치를 모두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수맥이 끊기면 제주섬이 위태롭기에, 전설과 신화를 통해 물을 지켜내기 위한 제주 사람들의 지혜로움과 간절함을 내포하고 있다.
'잘 살두 말곡, 못 살두 말곡 지장샘물만이만 살라'. 서홍동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제주 속담이다. 풀이하면, 잘 살지도 말고 못 살지도 말고 지장샘물처럼 살라는 의미다. 살다 보면, 올바른 운명의 길을 걷고 있는지 살짝 자신을 되돌아볼 때가 더러 있다. 남보다 가진 게 많다고 우쭐대거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게 되면, 훗날 크게 상심할 날이 올 것이다. 반대로 가진 게 없고 맨날 부족한 형편에 가난과 근심으로 살게 되면, 더 큰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언제나 일정하게 솟아나는 지장샘처럼 부족함이 없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이 물 먹듯', 새가 물을 먹듯이 조금씩 자주 마시면 그 용천수의 물이 고갈되거나 오염될 수 없다. 과거 허벅을 지고 용천수에서 물을 긷던 어르신들도 인정한다. 중산간 지역의 과도한 개발과 농업용수 관정이 급증하면서 마을의 용천수가 위급해졌다. 용천수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수질마저 의심받게 돼, 결국 지장샘마저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늦었지만,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더라도 미나리나 배추를 씻을 수 있고 새들이 안심할 정도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용천수가 사라지면 그 마을의 역사가 없어지며, 마을이 사라지면 제주의 역사마저 단절된다. 제주의 생태 자원과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만큼, 제주의 용천수 지킴이는 곧 지구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길임을 다시금 되새겨 볼 때이다. 그래야 깝작도요의 고민이 용케 고갈되지 않을까 싶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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