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날의 풍경이 향한 곳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날의 풍경이 향한 곳
  • 입력 : 2024. 09.04(수) 05:3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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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어째서 시간에 마모되고도 여전히 겨울잠을 자듯 어디선가 살아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이야기는 늘 깨어나 숨결을 따라 우리 몸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늘처럼 척추를 따라 머릿속으로 들어간 뒤 때로는 뜨겁게 또 때로는 차갑게 심장을 찔러댄다.'(우밍이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 중)

지난 시간 속 '오늘'을 알려주는 SNS의 기능은 사진 한 장으로 낯익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기억을 인도한다. 어떤 순간은 마치 어제의 일인 듯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어떤 순간은 타인의 시간을 엿보듯 낯설기도 하며, 또 어떤 순간은 소원해진 인연과의 한때를 향한 그리움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은 나만 알거나, 혹은 그 시간을 함께한 인연과의 비밀스러운 기억으로 다시 봉인된다. 오픈되지 않은 사진 몇 장이 전부이니 개인들의 기억은 기록되지 않고 가까운 인연들의 기억 속을 떠돌다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하니 역사의 틈새는 그 시대를 관통한 개인들의 삶, 그 기록되지 않은 무수한 기억들에 있을 것이다.

대만 최초로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른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2023)는 주인공 '샤오 청'이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자전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자전거의 행방을 쫓으며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과 멀리 말레이반도, 미얀마의 깊은 밀림으로 확장하며 대만 근현대사를 아우른다.

자전거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은 전쟁과 시대의 광풍에 저마다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숲은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이루는 것이나 숲으로 들어가 직접 헤매지 않는 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거대한 숲의 모습이 전부일 것이다. 소설 또한 전쟁을 체험한 아버지의 과거, 전쟁 피해자임에도 숨죽이고 살았던 '바쑤야'의 사연, 그리고 일본군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역시 전해 들은 이야기와 짧은 기록들로 설명돼 짐작될 뿐이다. 소설은 역사의 틈새, 그 채워지지 않는 간극을 밀림을 이루었던 나무, 전쟁으로 희생됐던 동물 등, 말할 수 없기에 증명되지 않는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현재의 삶을 지탱하고 있으나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와 역사를 촘촘히 매듭지었을 개인들의 삶,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은 그 모두에 대한 경외이면서 헤맬 줄 알면서도 숲으로 들어가는 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79년 전 9월 2일, 일본 시각으로 9월 3일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날이다. 과연 전쟁은 끝났는가. 그날의 풍경과 촘촘히 찍혔을 시간의 발자국들이 지금의 풍경을 향했던 것이 맞는가. 불현듯 한라산 중산간, 낮지만 빼곡히 군락을 이뤄 고요하게 땅을 흔드는 조릿대 울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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