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그날도 평소처럼 사무실은 다소 소란스러웠고, 책상 위엔 검토해야 할 서류들로 수북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조금 특별히 다가왔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오고, 내 주변 공기만 고요해졌다.
지인은 그저 간단한 부탁을 했을 뿐이다.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 규정을 살짝 비틀어 적용시키기만 하면 됐다. 사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서류 한 장이 있다. 서류 속 글자들은 원칙의 틀 안에서 가지런히 재배치돼 완벽해 보였지만, 내 안에선 작은 균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인을 도와주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 순간, 서류 속 글자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청렴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정직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짜 청렴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다. 아무도 모를 선택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손을 내리고, 그 완벽해 보이는 서류를 밀어냈다.
청렴은 그런 것이다. 일상의 순간에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일. 그렇게 쌓인 작은 순간들이 나를 지켜낸다. <오은경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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