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여름은 수십 년간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도 그리도 무던하게 제주특산품의 자리를 지켜 왔던 감귤마저 비틀거리며 8%대의 열과를 터트렸다. 고소득을 자랑하는 만감류 시설 하우스 속에서 홍매향도 말라버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온도를 높이려고 설치한 비닐하우스 위에 온도를 낮추려고 검은색 차광막을 덮어 줘야 하는 시점이 돼버렸다. 이렇게 세상은 역(易)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제주의 시절에 맞는 농작물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무작정 찾아 나선 길에서 두릅을 만나고 두릅 명인을 만났다.
제주의 자갈땅에 자생하며 병충해도 없고, 폭우와 폭염 속에서도 의연한, 또 으레 그러한 생명력을 듬뿍 품어 사포닌 함량은 홍삼의 여섯 배에 단백질 등 몸에 좋은 온갖 것을 다 갖추고 있는 두릅을 만났다. 하지만 "두릅 역시 이상 기온을 버티지 못해, 봄 한 철 수확하는 12가지 종류의 두릅 모두 그 의미가 사라졌다"는 두릅 명인의 말 또한 들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간절한 것들은 위기의 순간에 가까운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두릅도 그러했다. 이 시대의 기후변화에 적합한 신품종 두릅이 나타났다. 봄 한 철만 따는 원순, 곁순만이 아니라 여름철에도 고운 순이 순차적으로 돋아, 한 해에 두어 차례 이상 수확한다는 이형두릅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신품종인 이형두릅을 찾아내고 개발한 두릅 명인 대한연합영농조합법인 이춘복 대표는 그 재배 기술과 보급을 위해 전국 투어에 나서 지난 8월 하순, 마지막 여정으로 제주에 도착한 후 자신이 직접 보급한 이형두릅 농장에서 두릅 재배에 관심 있는 농가들을 대상으로 이형두릅 재배 현장 견학과 실습을 선보였다.
이형두릅은 다른 두릅과 달리 기후변화에 맞춰서 스스로 색을 바꾼다. 이른 봄의 원순은 짙은 자주색, 곁순은 보라색으로 점차 엷어지다가 녹색의 여름 순으로 바꾸며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안토시안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형두릅은 '카멜레온 두릅'으로 상표 등록됐다. 또한 두릅에 미친 두릅 명인답게 "두릅은 두릅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말과 더불어 "생산이 손쉬워 고령화된 농업 사회에 알맞은 작물이며, 다른 농작물에 비해 농약을 적게 쳐도 되는 친환경 농업이며, 노동력은 적게 들면서 소득은 갈수록 많아지는 특별한 품종"이라고 말했다.
또, 제주도가 우리나라 두릅 재배로는 최적지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니, 가장 먼저 수확해서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실제로 해마다 다른 지역 두릅이 출하되기 전까지 제주산 두릅의 가락동 시장 가격은 1kg당 8~10만원 꼴)과 무엇보다도 제주도의 토질이 두릅의 생존을 좌우하는 물 빠짐이 잘 되는 자갈땅이라는 게 가장 큰 이점'이라며 앞날을 기대했다.
한편 타 지역에서는 이미 두릅 농사를 위해 종근과 시설, 재배 기술 보급 등의 예산 마련 행정으로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고나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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