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는 유독 심한 것 같아요. 도로 주변이 덩굴로 다 뒤덮였어요." 취재가 시작된 한마디였다. 유독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무섭게 세력을 넓힌 덩굴류가 주요 도로변을 점령한 듯했다. 거대한 '덩굴 벽'은 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집어삼켰다. 전문가들은 덩굴류의 지나친 확산이 자연 식생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행정 차원의 제거 작업은 무기력했다. 한정된 예산에 일부 도로변에 한해 작업 범위가 정해졌던 데다 작업 횟수가 여름철 한 번에 그치면서 제거해도 티가 안 났다. "작업 속도보다 (덩굴류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담당 공무원의 토로가 괜한 게 아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기후 변화에 덩굴류 확산세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그런데도 위기 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 차원에서 최근 관련 전문가를 모아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정책 우선순위에선 밀리고 있다. 예산만 봐도 그렇다. 제주도 담당 부서는 덩굴류 제거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내년 1월부터 단계별 제거 작업을 도입하겠다며 사업비 5억원을 요구했지만, 제주도의 2025년도 예산안에는 8600만원만 반영됐다.
재정난에 쓸 돈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마냥 예산을 늘리라는 것은 아니다. 손놓고 있다가 더 큰 문제를 초래해선 안 된다는 거다. 예산 확보가 어렵다면 도청을 중심으로 행정시, 읍면동, 도민사회까지 해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때에 맞춰 나무를 새로 심는 것만큼이나 이미 심은 나무가 죽지 않도록 지키는 게 중요하다. <김지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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