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의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인 화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 발전해온 생업경제와 마을의 등장·형성·확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한 흐름 속에 화전, 화전 마을은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19세기 후반 민란의 시대와 일제강점기, 4·3에 이르는 핍박과 비극의 역사는 물론 1960년대 마을 개발사까지 응축되어 있다. 화전은 제주 역사와 사회변천사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다.
서귀포시 동홍동 가시머리물 지경 계단식 감귤밭. 이 일대에서도 화전농업이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별취재팀
오늘날 중산간 지대 마을 대부분은 화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잃어버린 마을의 상당수도 그 뿌리는 화전 마을이다.
본지가 탐사보도를 통해 조명한 서귀포시 영남마을이나 천서왓, 무동이왓, 생물도, 제주시 종남밧 등이 대표적이다. 한라산 고지대인 해발 1000m 가까운 능화오름 기슭의 능화동 화전마을이 확인되기도 했다. 100여 년 만에 실체가 드러난 능화동 화전마을은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셈이다. 화전 마을은 저마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화전의 역사는 여전히 소외되고, 화전 마을과 화전민들은 잊혀진 존재로 남아있다. 화전은 잊혀지고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집터 등 거주생활공간이 남아있고, 화전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 화전과 관련된 말방애 등 생활유물과 생산 양식 등 유·무형의 유산도 다양하다. 더 이상 멸실되기 전에 실태조사가 시급하다.
능화동 화전마을 집터
화전 마을은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화전 마을을 연결하던 이른바 '화전로드'가 중산간 지대를 감싸고 있다. 이 길을 통해 민란의 소용돌이를 비롯 소통과 교류, 연대가 이뤄지고 산촌문화를 유지해왔다. 화전으로 상징되는 중산간 마을 문화는 제주지역이 독특한 산촌문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조명하는 일이 시급하고, 특화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제주는 흔히 박물관 천국이라 불린다. 국공립은 물론 사설 성격의 다양한 전시 공간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화전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지방의 경우 화전 콘텐츠를 이용해서 화전민 삶과 마을을 재현하고 문화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북 영양군처럼 재정이 열악한 군 단위에서도 산촌생활박물관과 체험장을 조성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잃어버린 마을 종남밧.
제주지역도 더 늦기 전에 화전 마을과 집터, 관련 생활유물과 문헌 등에 대한 실태조사와 기록화 작업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동시에 제주 화전에 대한 학술적 접근 등을 통해 제주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 정비 및 마을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화전은 제주 마을의 흘러간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개발 바람 속에 공동체 위기를 겪고 있는 마을의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행정에서 화전 연구조사와 정비 활용방안에 의지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이런 데 있다. <끝>
특별취재단=이윤형 선임기자·백금탁 정치부장·진관훈(제주문화진흥재단)·고재원(제주문화유산연구원)·오승목(다큐제주)
화전 마을조사의 필요성
고재원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이사장
화전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농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는 초지와 숲사이에서 행하였던 농사로 불을 이용 지력을 높이고, 윤작을 통해 소출량을 조절하였다.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화전이 성행한 것은 조선후기 목장지대에 화전을 허용하면서 급격하게 화전농민이 늘어나게 된다.
화전마을은 2~5가구 정도의 작은마을, 10~20가구로 비교적 큰마을들이 제주도 중산간지대 곳곳에 퍼져 있다. 1948년과 1967년 항공사진을 보면 당시 식생, 가옥, 화전을 쉽게 볼수 있으며, 일제강점기(1910년대)에 만들어진 지적도에 지번(垈)과 소유자가 명기되어 있어 가구수 파악이 용이하며, 화전은 전(田)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 지적도에는 대부분 임야(林)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당시 개활지(초지, 농경지)였던 곳이 지금은 대부분 농경지와 숲으로 바뀌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화전마을은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된 경우가 허다하고, 1970년대 화전 금지령으로 이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머체골, 종남마을 등 개발의 손길이 안닿은 숲에서 집터(부엌,온돌), 올레, 돗통시, 경계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마을경관은 제주 마을의 원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물(집수정), 창고, 쇠막, 경작지, 쓰다버린 솥, 그릇까지 남아 있어 제주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다.
지금 제주는 개발로 더 이상 해안지방에 개발 소재가 없다. 점차 중산간으로 개발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미 골프장, 타운하우스 등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고, 진행중이다. 남아 있는 제주 근대유산인 화전 마을유적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보호대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이러한 화전 마을유적은 기록화 시켜야 한다.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전수조사와 아울러 간이 측량과 실측조사를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화전마을과 중산간마을을 연결하는 화전길(Road) 조사도 같이 이루어져 과거 제주마을의 원형 복원을 위한 초석을 다질수 있다. 특히 보호방안 마련도 시급하며, 조례와 같은 법적 보호장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재원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이사장>
※ 이 기획은 '2024년 JDC 도민지원사업'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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