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산일출봉에서 하산하는 관광객들. 그 아래편 상가에 이들을 맞이하려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어디에나 있는 음식들 말고어디에도 없는 맛 찾아 방문제주 식문화 자원 450여 종?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나"시대·공간별 먹을거리 풍경제주만의 미식적 정서 주목을"
[한라일보] 지난 주말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 그곳으로 향하는 도로 양쪽에 늘어선 상가들은 대개가 음식점들이었다. 유명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출봉 입구에 들어서니 하산한 관광객들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손에 들고 이동 중이었다. 주변의 우도와 해안 전망에 이어 이번엔 맛으로 제주를 경험하는 듯했다.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을 뜻하는 미식. 더 나아가 미식 관광은 "여행을 통해 지역 음식 문화를 개념 있게 즐기며 개인의 행복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모든 미식 체험 활동"('한국관광정책' 89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지의 음식은 그곳에 대한 기억을 오래도록 남게 만든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을 맛보기 위해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음식 말고, 어디에도 없는 맛을 찾는다. 제주는 미식 여행지로서 얼마나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l 프리미엄 상품 육성 사업으로 미식 관광 제시
제주 관광 산업 육성과 진흥을 위한 법정계획인 제4차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진흥계획(2024~2028)에는 제주도민과 관광객 대상 관광 인식 조사 내용이 실렸다.
이를 보면 도민들은 도내 관광 활동 목적지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요인(복수 응답)으로 '자연경관 감상'(56.4%), '휴양·휴식'(49.8%), '음식·미식 탐방'(34.7%)을 들었다. 지난 1년간 도민이 제주에서 참여한 관광 활동의 유형(복수 응답)에서도 '자연경관 감상'(66.3%), '트래킹'(57.8%)과 함께 '식도락'(57.0%)을 꼽았다.
내국인 관광객들은 '다른 지역을 고려했음에도 제주를 선택한 이유'(복수 응답)로 '자연환경이 좋아서'(56.7%), '바다와 해변이 있어서'(56.7%),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아서'(18.9%) 등으로 답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같은 질문에 대해 '자연환경이 좋아서'(70.5%), '바다와 해변이 있어서'(42.0%), '무비자 지역이어서'(36.4%), '직항 노선이 있어서'(34.1%) 등 순으로 택했고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아서'(22.2%)는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낮았다.
이 계획에서는 제주 관광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프리미엄·럭셔리 상품 육성' 세부 사업의 하나로 미식 관광 콘텐츠와 상품 개발·운영 지원을 들었다. 계획상 프리미엄·럭셔리 상품 육성 분야 4개 과제 투입 예산은 5년간 약 73억원이고 이 가운데 미식 사업은 8억원에 그친다. 중요한 건 지역 사회 공감대가 바탕이 된 실천이다.
제주 미식 관광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외국인 관광객은 제주에서 어떤 업종의 음식을 먹을까?'란 이름의 '2023년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음식점업 신용카드 소비 패턴 분석'에서 '식도락 마케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한류의 해외 확산 영향에 따라 한국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제주의 특산물을 활용한 향토음식과 더불어 퓨전 음식점 등 다양한 식도락 상품과 서비스, 카페와 연계한 한국식 제빵·제과 등에 대한 홍보 강화를 주문했다.
l 기초 자료 구축에서 마케팅까지 현주소는 어떤가
제3차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음식 육성 기본 계획(2023~2027) 역시 "제주 관광의 경쟁력 있는 대표 콘텐츠로 음식 관광 육성"을 목표의 하나로 삼았다. 올해 시행 계획에도 '제주 향토음식 육성 및 관광 콘텐츠화 지원' 등이 들어 있다. 이 계획에선 제주의 식문화 자원이 주식류, 부식류, 후식류 등 총 453종으로 타 지역에 비해 풍부하다고 했다.
미식 관광은 단순히 이 섬의 식문화 자원이 수백 종이라는 걸 넘어 그것들을 체험하도록 이끄는 여정이다. 한편에서는 그 자원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해야 한다.
부산 등 미식 관광에 힘을 쏟는 지자체들이 적지 않다. 관광 상품 차별화, 지역 경제 활력,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기대하면서다.

제주도·제주관광공사가 만든 관광 홍보 소책자에 실린 향토음식.
'국내 대표 관광지'를 내세우는 제주는 어떤가. 제주의 맛을 탐구하는 작업 대신에 간혹 벌어지는 관광지 음식값 논란만 부각되고 있다. 기초 자료 구축에서 마케팅까지 미식 관광 현주소가 어떤지 들여다봐야 할 때다.
최근 '제주지역 콘텐츠 투어리즘의 현황과 활용 방안' 연구를 통해 "스토리가 없는 콘텐츠의 생명력은 짧다"며 "해당 장소에 갔을 때, 하나의 스토리 여행이 될 수 있게 행위, 음식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제언했던 현혜경 제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라일보와의 통화에서 '먹을거리 풍경'을 강조했다.
현혜경 부연구위원은 "현생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존재'를 뜻하며, 생존을 위한 식사에서 벗어나 맛을 인식하고 즐기는 존재로 진화해 왔다. '맛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 문화적 소양이 어우러진 복합적 인식으로, 시대와 공간에 따라 고유한 먹을거리의 풍경을 형성해 왔다"고 했다. 그는 "제주 해안가의 식당에서 맑은 소주와 신선한 회를 곁들이며 여행과 힐링에 대해 나누는 한 장면은 제주만의 미식적 정서를 담고 있다"며 "오늘날 이러한 먹을거리 풍경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하나의 미식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즐기기 위한 미식 투어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진선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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