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섬 속의 섬을 가다
(8)고고학의 보고
이제까지 ‘섬 속의 섬’의 고고학적 환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제주 본섬의 선사유적·유물에만 치중해 온 탓이다. 다양한 유적·유물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묻혀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 ‘섬 속의 섬’의 고고학적 환경은 점차 훼손되고 있었다. 제대로 조명조차 안된채 무분별한 공사나 무관심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취재는 ‘섬 속의 섬’의 고고학적 환경에 대한 기초 조사 및 보존의 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취재는 고고학자인 강창화(제주문화재연구실장)·고재원씨(도민속자연사박물관 연구원)와 함께 이뤄졌다.
제주 본섬 주변 ‘섬 속의 섬’에 대한 첫 고고학적 접근이었다.
문헌상 화산분출 1천년이 되는 비양도, 고인돌 밀집지인 가파도와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보물섬 우도, 낚시터로 유명한 다려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차귀도, 또 마지막으로 언급할 서건도 등이다.
이 가운데 유인도는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우도이고, 다려도 차귀도 서건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비양도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토기편과 탐라시대 초기의 곽지리식 토기편 등 유물이 출토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화산 분출 이전 선사인들의 삶과 관련된 단서가 확보된 것이다. 때문에 섬의 형성과정과 자연·인문환경에 대한 체계적 조사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다.
가파도에서는 고인돌 파괴 현장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파헤쳐 지거나 경작과정에서 이 섬의 고인돌 중 상당수가 무단 이전 훼손된 것으로 밝혀졌다.
우도에서도 중요한 고고학적 조사성과를 얻었다. 특유의 주거유형인 동굴입구집자리 유적이 제주 본섬 이외의 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돼 관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신석기시대 전기의 조흔문토기편과 타제석기 등이 출토돼 종합적인 조사 및 보존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인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는 무인도지만 선사시대부터 제주 본섬과 궤를 같이하는 생활무대였음이 확인됐다.
특히 다려도는 제사유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되는 곳이다. 시기적으로도 탐라초기의 제사유적은 육지부에서도 드물다. 하지만 유적의 특이성 면에서 주목 받는 이곳 역시 상당부분이 지속적인 파괴로 신음하고 있었다.
초기 신석기 유적이 자리한 고산리 자구내 포구 앞 차귀도에서도 곽지리식 토기편이 확인됐다. 기원 무렵부터 고대인들의 생활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서건도(犀建島)는 제주판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서귀포시 강정동 산 1번지로 면적은 1만3천3백67㎡에 불과하다. 강정동 해안과는 3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섬은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해 한달에 10여차례씩 간조시 바닷길이 열려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섬의 북서쪽 소나무 숲 일대에서는 적갈색 무문토기편 등이 출토된다. 강정동 유물산포지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유형으로 공렬토기 마지막 단계(기원전 1∼2세기)에 해당된다.
제주섬의 공렬토기 문화는 상모리 유적에서 시작돼 서북부와 서남부로 전파경로를 거친다. 서북부로는 동명리 곽지리 용담동 삼양동 김녕 등지에서, 서남부로는 서귀포시 강정동 유물산포지에서도 볼 수 있다. 서건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2,500년전 상모리에서 출발한 제주 공렬토기 문화의 전파경로를 보여준다.
이렇듯 ‘섬 속의 섬’ 은 고고학적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 본섬의 선사문화 전개과정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섬의 고고학적 다양성은 마치 제주 선사문화의 축소판을 보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섬에서 곽지리식 토기편이 출토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곽지리식 토기는 기원무렵 제주 고대인들이 완성해낸 대표적인 토착적 토기로 잘 알려져 있다.
탐라초기의 표지적 유물로 제주 고유의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일정한 규모의 세력 형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관련학계에서는 곽지리식 토기를 통해 탐라의 사회상과 ‘국’(國)으로의 형성과정을 연결지으려 한다.
탐라초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제주 본섬 뿐 아니라 주변 섬에까지 인구의 팽창과 마을의 확산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탐라는 ‘국’의 단계로의 진입을 위한 토대를 서서히 구축해 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섬 속의 섬’의 선사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및 보존방안 마련은 시급하다. 제주도와 북·남군 등 자치단체의 관련부서에서도 본보의 보도에 따라 올해부터 학술조사 및 보존조치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섬 속의 섬'은 제주선사문화를 규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를 간직하고 있다.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사진설명]바닷물이 빠진 서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