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의 현장](16)김시태의 '연북정'-1

[4·3문학의 현장](16)김시태의 '연북정'-1
두려움없는 사랑으로 혁명을 꿈꾸다
  • 입력 : 2008. 05.23(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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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 포구를 통해 제주땅에 발을 디딘 유배객들이 북쪽의 임금을 그리워하며 올랐던 연북정. 현준과 인숙은 이곳에서 사랑을 했고, 분단없는 세상을 위한 혁명을 꿈꿨다. /사진=김명선기자

조천리 배경 4·3에 뛰어든 젊은이들 그려
눈물짜는 사연 대신 당당한 항쟁의 주체로
조천중학원 옛 터엔 그날의 열정 아스라이


가파른 돌층계를 올라서면 '연북정'현판이 보인다. 사모할 연(戀)자에, 북녘 북(北)자. 북은 임금을 뜻한다. 제주의 옛 관문이었던 조천 포구를 통해 섬에 첫 발을 디딘 유배객들은 제일 먼저 그 정자에 올라 임금께 예를 다한 다음에 적소로 떠났다.

저 바다를 건너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먼 바다가 한 눈에 걸리는 정자에 올라보니 유배객들이 품었을 그런 간절함이 떠오른다.

해녀의 아들 김현준과 남로당제주도당위원장의 딸인 지인숙에게 연북정은 어떤 장소였을까.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은 연북정에서 불의한 세상과 싸우는 법을 배운다. 김시태씨(68)의 장편 소설 '연북정'(2006)은 그들의 이야기다.

"누가 감히 하늘의 푸르름과 땅의 따스함을 총칼로 빼앗겠다는 것입니까? 누가 감히 저 바다의 깊고 푸른 뜻을 빼앗겠다는 것입니까? 저들은 우리를 노예로 부릴 수 있을 진 몰라도 이 땅과 하늘과 바다에 깃든 우리 조상의 혼까지도 지배할 순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점령군에게 분명히 밝혀두어야 합니다."('연북정')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혁명을 외친다. 소년에서 '구덕부대 비바리'까지 동지가 되어 조선의 분할 침략계획을 반대하고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다. 조선통일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조선인에게 맡겨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그 배경이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이고, 조천중학원이다.

만세동산이 있는 조천은 제주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를 여럿 배출했고, 그들이 해방이후 좌익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남로당제주도당위원장을 지낸 안세훈처럼 4·3과 관련된 인물도 있었다.

'해방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던 조천중학원은 또 어떤가. 지금의 조천보건지소 자리가 조청중학원 터였다. 옛 흔적은 지워졌지만 그 날의 열정은 바람결을 타고 밀려오는듯 하다. 조천중학원에 다녔다는 강두봉씨(조천리·81)는 "당시 조천면 일대는 물론이고 제주읍, 봉개에서까지 배우러 왔다"면서 "경찰의 주목을 받으면서 2년만에 문을 닫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때 제주의 명물이었던 조천중학원 옛 터는 조천보건지소로 변했다. 조천중학원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은 4·3에 불을 당겼다.

1946년 설립된 조천중학원은 문을 열자마자 구름처럼 학생이 몰려들었다. 교사들의 열정도 엄청났다. 월급도 반납하고 봉사정신으로 임했다. 훗날 인민유격대 사령관이 된 이덕구도 이 곳의 교사였다. 1947년 3·1절 시위와 총파업 이후 조천중학원은 감시대상이 됐다. 교사들이 끌려다니고, 도망쳤다. 소설속 조천중학원 학생이던 지용근의 고문치사 사건도 피해자 이름만 다를 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살인자는 누구냐, 떳떳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라는 군중의 성난 목소리는 4·3에 불을 당겼다. 5·10선거까지 겪으면서 조천중학원은 '빨갱이 학교'로 낙인찍힌다.

그들에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계급의식을 덧씌우는 것은 옳을까. '연북정'에서 청년동맹에 가담해 운동을 벌이는 젊은이들의 시선은 황혼에 접어든 항일운동가 출신 노인의 말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거지.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야, 어떻게 자기를 지키느냐는 거야. 즉, 어떤 상황, 어떤 불합리한 사회에 놓일지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적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고 떳떳하게 살다가는 것, 그것이 곧 자기를 지키는 것이야."('연북정')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어떠한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에 충실하기 위해 과감히 전진하는 삶'을 보여준다. 연북정, 비석거리, 만세집, 동백곶, 토끼굴 등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생기를 띤다. 참혹과 비극이란 단어로 채워졌던 4·3의 역사에서 그토록 빛나는 순간이 있었던가.

주인공 현준은 '밀항도 돈이 있고 빽이 있어야 하는'거라고 말했다. 해방되고 3년도 안돼 모두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치는 걸 보고 던진 한마디였다. 남아있는 자들은 그랬다. 피하지 않고 부딪힌 거다. 마을에서 희생된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지고 목이 메어버리는 사람들, 밤늦게까지 삐라와 포스터를 제작하고도 이튿날 이어지는 시국 이야기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들. 배웠든 못배웠든, 집안이 어떻든 희미한 등불아래 모인 그들은 언제든 제 한몸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비록 그 끝이 보이는 싸움일지라도.

첫 소설 '연북정'쓴 김시태씨, 다시쓰고 고쳐쓰길 12년… 조천의 자존심을 담았다

"조천은 대정과 더불어 4·3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지역이다. 4·3을 주도한 인물중에 조천 출신이 많았다. 일제독립운동에서 알 수 있듯 저항이 심했던 곳이 아닌가."

김시태씨(68·한양대 명예교수)는 평론가이자 시인이다. 그가 쓴 첫 소설이면서 두 권짜리 장편인 '연북정'은 조천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조천은 그의 아버지 고향이다.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제주로 왔고 제주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나이 마흔이던 1980년 제주를 떠난 그에게 조천은 각별했다. 비석거리와 연북정, 만세동산에 대한 약간의 일화를 품고 있을 뿐이지만 왠일인지 조천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연북정'은 당초 자전적 소설에서 출발했다. 1천3백매짜리 원고를 다 써놓은 적도 있었지만 그걸 폐기하고 다시 쓰고 고쳐 썼다. 그러길 세번만에 완성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12년만의 일이기도 하다. 플롯이 완전히 바뀌었고 시점도 달라졌다.

지금도 가까운 친척들이 살고 있는 조천을 배경삼아 4·3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생존자들을 만나고 희미한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글을 써나갈수록 그랬다. 때로 사건의 시·공간적 거리를 바꾸고 지명이나 성(姓)을 달리하는 등 '연북정'이 픽션이라는 점을 알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소설은 고달픈 역사의 회고담과는 다르다. 작가는 "억울하게 당했다는 피해자 의식을 담은 작품과 달리 일제에서 해방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맥락에서 행동적 지식인들의 저항과 적극적인 투쟁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엔 죽음 앞에서도 떳떳한 인물들이 살아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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