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마무리된 '제주미래비전'에서는 '청정'과 '공존'을 향후 제주의 핵심가치로 제시하면서 여러 가지 추가적인 노력들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숙제들이 많다는 것이며, 청정과 공존은 현재 제주가 가진 것을 상기하고, 내일로 가는 방향키이기도 하다.
제주도를 지도에서 보면 동서방향 약 73㎞, 남북방향은 약 31㎞로 타원형의 안정된 형태를 가진 모양이다. 또한 제주의 유무인도를 보더라도 이러한 제주도 본섬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라산체에서 한라산이 중심에 위치하며, 한라산 주변으로 기생화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 한라산 정상에는 백록담이 위치하고 독특한 식물상과 빼어난 경관이 탐방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백록담을 닮은 분화구를 가진 오름들과 명소들도 많이 있는데, 그중에 사라오름, 물영아리 등이 있다. 산방산을 백록담에 올려놓으면 딱 맞아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성산일출봉은 백록담을 옮겨온 듯한 모양새이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368개의 오름을 기생화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한라산이 중심이고 나머지 오름들은 종속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한라산과 제주의 자연을 볼 때 지형적 특성과 모습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작 제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것들이 가진 깊은 관련성과 프랙탈 이론에서 이야기했던 자기상사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모든 사물과 자연, 사람들 사이에는 다양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자기상사성(self-similarity)은 프랙탈(fractal) 이론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프랙탈은 사람이 만들어낸 도형에도 나타나고 수많은 자연의 산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연, 생물 등 어느 부분을 확대해 보면 전체와 같은 패턴이 나타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리아스식해안의 해안선, 눈의 결정체, 산, 구름, 고사리, 나무, 브로콜리, 상추 잎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생물에서 프랙탈이 나타나는 것은 자신들이 생존하는 환경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적응이라고 알려져 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고사리들이 한라산체에 자라날 것이다. 한라산체에 서식하는 고사리가 넘쳐나는 것도 자기상사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제주땅에 적응한 식물중 하나인 고사리가 작은 단위, 좀 더 크게는 오름이 중간단위, 한라산체는 가장 큰 단위라 할 수 있다.
제주가 지켜가고자 하는 가치가 청정과 공존으로 결정되었고, 증가하는 상주인구와 관광객들의 활동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일정부분의 개발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산간 일대는 보전을 강화하고, 중산간 이하는 부지의 여건과 기반시설의 확보 가능성, 환경적 지속성 등을 고려하여 제한적인 개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자연녹지지역의 경우는 용도지역제의 기본원칙 및 정의에 따르면 장래 도시가 성장하고 개발가용지가 필요할 때 활용하기 위한 유보지로서 존재한다고 되어 있다. 인구 감소에 따라 지역이 쇠퇴하는 경우에 자연녹지지역을 활용하여 택지를 공급하고 공공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인구가 성장하고 활동인구와 관광객 유입이 왕성한 제주는 다른 지방과 동일한 조건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비도시지역을 보전하고 기존 도시지역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도에서 수립한 경관관리계획에 지문(地文, landscript)을 고려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소단위는 지문, 중간단위는 오름 등을 고려하고, 대단위 공간은 한라산체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특성과 연계하여 경관관리 등에 활용되어야 한다. 공간체들이 보여주는 징후들은 총체적이며 연계성을 고려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것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필자는 제주에 살고 있는 것이 선택받고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더불어 눈이 호사로운 자연경관까지 일상속에서 접할 수 있다. 일상이라서 이곳에 사는 혜택과, 이 땅의 참된 가치를 잊고, 지극히 세속적인 욕심만 추구하고 살지는 않는지 반성해 본다. 제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태생적으로 안정된 이 땅을 욕심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잠깐 빌려 쓰고,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대상으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성용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